감사원이 5일 내놓은 원자력발전소 감사 결과는 국가 핵심시설인 원전 관계자들의 안전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수입산 부품에 이어 국내산 부품도 가짜 공인기관의 시험 성적서를 달고 원전에 납품된 것으로 밝혀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당장 원전 가동을 중지해야 할 정도의 중요 부품은 아니라고 하지만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오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부품 비리를 보면 국내 모든 원전을 상대로 전수(全數) 조사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감사 결과 원전의 관리 및 운영 주체들은 비리와 무사안일로 얼룩져 있었다. 감사원은 원전 현장 직원이 납품업체와 짜고 부품을 빼돌려 다시 납품받는 수법으로 16억여 원을 횡령한 사실을 새로 적발했다. 심지어 한수원은 국산 부품 개발업체로 지정된 회사가 다른 회사의 부품을 사서 2배가 넘는 값에 납품을 해도 몰랐다. 일부 납품회사는 납품 가격을 올리려고 입찰 과정에서 담합까지 서슴지 않았다.
보안 불감증도 심각했다. 원전 중앙감시 제어시스템은 외부 해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외부 인터넷과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고리 등 4개 원전 직원들은 업무 편의를 위해 인터넷과 연결된 업무용 PC를 시스템에 연결해 사용했다. 2010년 이란의 원전 시스템에 악성코드가 침투해 제어시설 오작동이 일어난 사고가 한국에서도 벌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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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생산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원전 23기 가운데 6기가 위조 부품 사건과 정비 문제로 인해 한꺼번에 멈춰 서 있다. 올겨울 국민은 전력대란 걱정으로 발 뻗고 지내기 어렵게 됐다. 한수원은 2001년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이후 원자력 전문가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으로 전락했다. 조직 내에는 도덕적 해이와 비리가 만연했고, 내부 통제와 외부 감독체계는 부실했다. 정부 부처를 포함해 원전 운영과 관련된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책임 소재를 가리고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할 필요가 있다. 고리 1호기가 처음 가동된 1978년 이후 34년간 누적된 원전의 비리 사슬과 난맥상을 철저히 끊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