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내년 사업계획 키워드는?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6일 그룹의 내년 경영계획 키워드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인 저(低)성장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위기관리와 내실 경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신성장동력까지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국내 10대 그룹(자산 순위 기준, 공기업 제외)의 내년 사업계획 윤곽을 들어봤다.
17, 18일 열리는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할 예정인 삼성그룹 경영진은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라’라는 과제를 받았다. 특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취임 25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고, 내년이 ‘신경영 선언’ 20주년이 되는 때인 만큼 성장 고삐를 더 바짝 죌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는 올해 1위를 차지한 스마트폰 부문에서 라이벌 애플과의 격차를 더 벌리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판매 5500만 대를 달성해 내년에 사상 첫 ‘연간 영업이익률 15%’에 도전할 계획이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도 중국을 전략 거점으로 삼아 세계 1위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200조 원대 매출을 예상하는 삼성전자는 내년에는 매출 230조 원, 영업이익 35조∼36조 원을 목표로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있는 SK그룹은 먼저 그룹 경영을 이끌 위원회 체제를 정비하고 임원 인사를 마친 뒤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할 계획이다. 주력사인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은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나섰다. 가입자가 정체된 가운데 통신비 인하 압력이 커져 성장 모멘텀이 줄어든 SK텔레콤은 강력한 경비 절감과 함께 스마트폰 가입자들에게 고부가가치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해외 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선도사업 발굴’과 ‘강한 실행력’을 주문하면서 연말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LG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2803억 원)의 4배를 웃도는 1조2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본격적인 ‘사세(社勢) 부활’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내년 ‘옵티머스G’와 5인치 화면 ‘뷰 시리즈’, 각진 모서리의 ‘L 시리즈’, 보급형 ‘FX 시리즈’ 등 4종류의 스마트폰을 시리즈로 출시하면 2분기(4∼6월)부터는 분기별 스마트폰 판매량 1000만 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보고 있다. LG전자는 내년 1분기(1∼3월) OLED TV를 본격 양산할 계획이어서 삼성전자와 TV 부문에서 또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는 ‘내실 경영’에 치중하는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자동차 시장이 모두 형편이 좋지 않은 만큼 ‘실속 모드’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산업부 종합>
▼ 삼성 “새로운 도전”… LG “선도사업 발굴” ▼
내년 국내 자동차 시장은 경기 부진과 개발소비세 인하 종료 탓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해외 시장도 유럽 경기가 여전히 위축된 가운데 미국과 중국 시장의 회복세가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현대차 측은 “브랜드 인지도와 품질을 높이면서 ‘제값 받기’를 통해 위기를 돌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5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각 계열사 대표들에게 불황기 리스크 관리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비상경영이라고 연구비, 제품개발비 같은 ‘미래(대비) 비용’을 아끼는 것은 기업의 체질을 약화시킨다”며 “업종과 관련된 좋은 인수합병(M&A) 건이 나왔을 때는 반드시 성사시켜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단서를 달았다. 롯데그룹 측은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이달 말 확정할 예정”이라며 “내년에 매출 10조 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해외 사업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업과 해운업이 모두 불황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진그룹은 내년에도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보수적 관점에서 내년 경영계획을 짜고 있다”며 “특히 최근 신기종 도입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 터라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이참에 체질을 바꾸자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저성장 국면을 계기로 조직의 체질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그룹들도 있다. 올해 초부터 상시 위기관리센터를 운영하며 시나리오 경영을 해오고 있는 포스코는 내년 키워드로 ‘위기관리와 경영 체질 개선’을 꼽았다. 포스코 관계자는 “세계 경기 부진이 쉽게 타개되지 않을 걸로 본다”며 “판매량 확대도 추진해야겠지만 자동차 강판과 에너지 강재, 전기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전략 지역으로 수출해 수익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주력인 상선 시장의 업황이 단기간에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는 만큼 이번 불황을 경영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겠다는 분위기다. 최근 단행한 그룹 임원 인사에서는 현대중공업 임원 수를 줄이는 가운데 해양플랜트와 엔지니어링 분야 인재를 발탁하는 모습이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데 대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GS그룹은 해외 시장을 무대로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 기회를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4일 단행한 그룹 인사에서는 이런 미래 전략사업을 추진하는 데 시너지를 높일 수 있도록 계열사 간 임원급 인재 교류를 확대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연 그룹 전략회의에서 “각 계열사가 내년 이후를 준비하는 일이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난관을 이겨내고 반드시 비전을 달성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리=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