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피랍 제미니호 선원 4명 전원 풀려나정부 ‘불개입’ 고수하자 조건 낮춰… 5일 입국선장 “벌레 떠다니는 물, 속옷으로 걸러 마셔”
링스헬기 타고 강감찬함 승선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582일 만에 풀려난 제미니호의 박현열 선장 등 한국인 선원 4명이 1일 오전(현지 시간) 해군 청해부대의 링스헬기에서 강감찬함으로 내리고 있다. 기관장 김형언 씨가 청해부대 대원들에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제공
선장 박현열(57), 기관장 김형언(57), 항해사 이건일(63), 기관사 이상훈 씨(58)는 1일 오전 11시 55분 링스헬기를 타고 청해부대 강감찬함(5500t급)에 탑승했다. 강감찬함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벗어나 공해를 거쳐 이르면 3일 새벽 케냐 몸바사 항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5일경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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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장은 이날 석방 후 연합뉴스와의 위성전화 통화에서 “해적에게 감금돼 있던 동안 우리에서 짐승처럼 지냈다. 빗물을 받아 먹었고 실지렁이와 올챙이, 애벌레가 (물에) 떠다니는 것을 러닝셔츠로 걸러내면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운동도 전혀 하지 못해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4명 모두 체중이 10kg가량 빠졌다고 한다.
해적들은 선원들을 2명씩 따로 감시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사를 몰라 불안감도 많이 느꼈다고 박 선장은 설명했다. 해적들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게 한 뒤 가족들이 들으라고 공포탄을 쏘는가 하면 선원들의 귀와 목을 비틀어 비명을 지르게 만들기도 했다.
해적들은 지난달 말 제미니호의 선주인 싱가포르 선사 측과 선원들의 석방에 최종 합의했다. 앞서 해적들은 ‘아덴 만 여명작전’으로 생포된 해적 동료 5명의 석방을 요구했고 이 요구를 철회한 이후에는 한국 정부를 협상에 끌어들이려는 언론플레이를 하며 터무니없는 몸값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가 “해적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며 불개입 원칙을 완강히 고수하자 해적의 기세는 점차 꺾이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연방정부 출범 이후 단속을 강화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커지고 협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된 것도 해적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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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달 말 협상 타결 직후 선원들의 안전한 신병 인수를 위해 강감찬함을 현지에 파견했다. 강감찬함은 싱가포르 선사 측 구조선이 높은 파도 때문에 해안 접근에 잇달아 실패하자 링스헬기를 투입해 직접 구조에 나섰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선박 내에 선원피난처(시타델) 설치를 의무화하고 위험 해역을 항해할 땐 보안요원 탑승을 의무화하는 등 대책을 강화할 방침이다. 국회는 지난달 시타델 설치를 의무화한 ‘국제 항해 선박 및 항만시설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