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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 언니 런던 눈물이 내 투혼 일깨워”

입력 | 2012-11-24 03:00:00

■ 국제스포츠클라이밍 랭킹 1위 ‘암벽여제’ 김자인




‘암벽여제’ 김자인의 손은 굳은살이 가득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에 관절염을 달고 산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르고 또 올랐던 암벽이 남긴 흔적이다. 아직도 소녀티가 나는 예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김자인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다. 김자인이 22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노스페이스 인공암벽장 앞에서 두 손을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에 온 지 이틀 만에 2kg은 찐 것 같아요.”

22일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암벽여제’ 김자인(24·노스페이스)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시즌 초반 슬럼프를 딛고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여자부 리드(난이도) 부문 세계랭킹 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홀가분하게 시즌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김자인은 스마트폰을 꺼내 귀국한 날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상 사진을 보여줬다. 갈비찜, 잡채, 족발, 보쌈, 닭강정, 초밥…. 보기만 해도 배부를 것 같은 음식이 가득했다. 김자인은 “먹는 걸 너무 좋아한다. 오늘 저녁엔 대창을 먹기로 했다”며 웃었다.

○ 손연재보다 더한 ‘충격 식단’

올해 런던 올림픽 때 리듬체조 손연재의 식단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저녁을 사과 한 개로 때우고 경기 당일엔 빵 한 조각과 계란 프라이, 소시지, 요플레 등을 먹으며 보디라인을 유지한다는 거였다.

아담한 체구(키 153cm, 몸무게 41kg)인 김자인도 마찬가지. 날렵하게 암벽을 오르기 위해 체중 관리는 필수다. 제대로 먹는 식사는 아침과 점심을 겸해 먹는 한 끼뿐이다. 그러고는 고구마나 자몽 1개를 먹는 게 전부다. 밤에 너무 배가 고프다 싶으면 우유 한 잔을 마신다. 김자인은 “내일 아침에 뭘 먹을까 생각하며 잠드는 날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김자인은 “조금만 참으면 내가 좋아하는 클라이밍을 더 재밌게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버틴다. 그 대신 시즌 후엔 좋아하는 음식은 물론 술도 즐긴다”고 했다. 그의 주량은 소주 1병 반, 맥주는 무제한이라고 했다.

○ 손-발가락 관절염 달고 살아

올해 초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뒤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성적으로만 평가받는 게 무서웠다. 대회에 나가기가 싫었을 정도”라고 했다. 8월까지 김자인은 리드 월드컵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세계랭킹도 미나 마르코비치(슬로베니아)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장미란(29·고양시청)의 런던 올림픽 역도 경기를 TV로 본 게 반전의 계기가 됐다. 장미란이 4위로 경기를 마친 뒤 바벨에 손 키스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그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미란 언니가 느꼈을 부담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미란 언니는 역도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후 김자인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9월 이후 벨기에와 미국 월드컵, 그리고 목포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랭킹 1위도 탈환했다.

김자인은 암벽을 오르내리느라 벌써 손가락과 발가락에 관절염을 달고 산다.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인생을 바꿀 만한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 그렇게 클라이밍에 열중하는 것일까. 그는 “이 종목의 매력은 한마디로 ‘몰입의 즐거움’이다. 가끔 암벽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들 땐 기분이 너무 좋다. 또 한 코스를 완등하면 새로운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흥분된다”고 했다. 그는 2주간의 짧은 휴가를 즐긴 뒤 다시 내년 시즌을 대비해 강훈련에 들어간다.

▶ [채널A]‘암벽여제’ 김자인, 장미란을 보고 눈물 흘린 이유?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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