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주부 이모 씨(35)는 대형마트에서 계산하지 않은 쥐포 한 봉지를 가방에 넣고 나오다 보안요원에게 적발됐다. 이 씨를 1시간 넘게 보안팀 사무실에 감금한 보안요원 2명은 “이전에 훔친 물건까지 말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에게 알리겠다. 전과가 생기고 구속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포인트카드를 통해 이 씨가 그때까지 약 300번 다녀간 사실을 알아낸 보안요원들은 1만 원짜리 쥐포를 훔친 대가로 300만 원을 요구했다. 약점을 잡힌 이 씨는 300배를 뜯길 수밖에 없었다.
영국계 글로벌 유통회사인 테스코가 100% 지분을 가진 홈플러스 서울 금천구 시흥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홈플러스의 이승한 회장(66)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협약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의 한국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 사례는 홈플러스에서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다. 2010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수도권의 홈플러스 지점 10곳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130명이 보안요원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2억여 원을 빼앗긴 것으로 15일 경찰 조사 결과 새롭게 드러났다. 전현직 지점장 13명과 본사 부장급 등 총 17명의 홈플러스 관계자가 경비요원들에게 합의나 훈방 등 경비업무를 벗어난 행위를 시킨 혐의(경비업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됐다. 보안요원 48명도 물건을 훔친 사람을 협박한 혐의(공동공갈)로 불구속 입건됐다.
▶본보 10일자 A12면… 3만원 쇠고기 훔친 60대女 협박, 800만원 뜯어낸 경찰-보안요원
보안요원들은 주로 20∼40대 여성을 상대로 물건 값의 최고 300배에 이르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피해를 본 130명 가운데 100만 원 이상을 합의금 명목으로 뜯긴 사람은 81명에 이른다. 이렇게 뜯어낸 합의금 총 2억 원 가운데 1억5000여만 원은 매장 내에서 파손되거나 사라진 물건에 대한 손실비용으로 처리됐다. 나머지 5000만 원은 보안요원들이 빼돌리거나 구속된 유모 경장에게 뒷돈을 챙겨주는 데 사용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최종혁 폭력계장은 “홈플러스는 보안업체 재계약 평가 기준을 만들어 100만 원 이상의 합의금을 받아내면 가산점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감점을 줬다”고 말했다. 보안업체의 실적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생필품을 훔치는 주부를 협박해 돈을 뜯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는 해명자료를 내고 “100만 원 이상의 합의금을 받으면 가점을 주는 평가기준이 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현장에서 적발된 품목에 한해서 정상적인 금액만 받도록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측은 전현직 지점장과 본사 부장 등이 입건된 데 대해 “경찰의 일방적 주장일 뿐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은) 보안용역업체 팀장 및 경찰관 개인비리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다른 대형마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