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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은 아니지만…

입력 | 2012-11-10 03:00:00


“저런 남편의 100분의 1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아?”

TV를 보던 아내의 지청구가 또 시작됐다. 남자는 딴전을 피우며 불만을 삭였다. 대체 저놈의 드라마는 왜 TV만 켜면 나오는 것인지. 얼마 전에 ‘마지막 회’라고 쾌재를 불렀는데 케이블 채널로 갈아타곤 하루 종일 나온다.

“어머나! 저렇게 (남편이) 시어머니한테 당당하게 맞서주니까 저 여자는 얼마나 행복하겠어.”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을 눌러 참았다. 드라마 때문에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부가 합심해 잘 살라’는 것이 취지였는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드라마로 인해 부부싸움이 생긴다’ 쪽이었다.

단순한 불평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과 사사건건 비교하면서 자존심을 긁어대는 데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는 견디다 못해 뱉어낸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자기가 먼저 여자주인공처럼 해봐. 똑 부러지게. 그러면 나도 해볼게.” 아내의 분노가 타올랐다. “그걸 말이라고 해?” 분노는 ‘사내가 되어가지고는’ 타령과 ‘꼴도 보기 싫은 ○씨네’ 후렴으로 이어졌다.

남자는 그 이후로도 말다툼을 벌였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여주인공처럼 시어머니한테 눈 똑바로 뜨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 게 현실에서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왜 남편에게는 드라마처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인지.

아내가 채널을 돌리자 다른 드라마에도 어김없는 ‘부부 이상형’이 등장했다. 다정하며 능력이 넘치고, 마음을 읽어내 감동시킬 줄 아는 남편이자 아들, 사위. 또 아름답고 날씬한 몸매에 조신하면서도, 능력은 기본에 성격까지 천사인 아내이자 며느리.

저런 부부가 어떻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남자는 깨달았다. 아내에겐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봐야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TV 드라마의 환상에라도 빠져, 남편으로 상징되는 지겨운 현실을 타박하고 싶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런 환상에 이따금 의지해보는 것도 세상살이 지혜가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도 저렇게 해보라는 거지?” 남자는 정색을 하고 남자주인공 흉내를 냈다. “어머니! 불만이 있을 때는 아내가 아닌 저한테 말씀을 해주세요.”

아내가 놀라더니 이내 남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시어머니 흉내를 냈다.

“뭐라고? 소 팔아서 대학 보내고 결혼까지 시켜놨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 사내가 되어가지고는 마누라 치마폭에 휘둘리는 못난 녀석.”

그렇게 드라마 흉내인지 역할극인지를 하다가 ‘싸움거리’ 하나가 사라졌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