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산업부 기자
7일 남편의 당선 연설 석상에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인 ‘마이클 코어스’의 와인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에 기자는 무릎을 쳤다. 과거 공식 석상에서 몇 차례 입었던 이 드레스를 다시 꺼내든 센스라니…. 고가(高價)의 자국 디자이너 의상이지만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의 큰 행사에서 입은 ‘재활용’ 드레스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경제적 재건을 외치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외친 시점에, 제대로 내조의 핵심을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패션 정치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치러진 지난 대선을 전후해서다. 취임식 등 공식 행사에서 대만과 쿠바 출신 디자이너 의상을 입으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국 내 소수민족의 정서를 자극했다. 오바마의 패션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침체한 미국의 패션 산업을 부흥시키는 경제적 효과까지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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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0년 지났고,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올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 같은 질문지를 대선 후보 또는 퍼스트레이디 후보에게 보낸다 해도 10년 전과 크게 다른 답변이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옷 로비’ 등 패션을 둘러싼 정치 스캔들이 많았던 탓인지 정치인들은 멋을 내는 데 주저하고, 유권자들은 멋 내는 정치인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짙은 탓이다.
국내 패션업계는 최근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해외 진출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과거 구호에만 그쳤던 이른바 ‘K패션’ 바람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서맨사 캐머런 영국 총리 부인, 프랑스의 전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 등은 모두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자국 패션의 외교관 역할을 했다. 패션 감각을 키워 ‘쿨한 미국’의 이미지를 높였으면 좋겠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합성한 미국 블로그들도 눈에 띈다. 이미지가 권력인 시대에, 리더들이 패션으로 정치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국내 패션 산업의 발달 정도나 일반인들의 관심도로 봤을 때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는 멋을 내고 싶은 본능이 적잖게 자리 잡고 있다. 패션 감각은 이미 현대인의 능력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의 정치적 리더 가운데서도 이런 ‘능력자’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 기자만의 바람일까.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