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녹색기후기금의 유치가 가져올 경제적 효과는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안보적 효과는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형 국제기구의 유치를 통해 안보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국제 안보의 중요한 측면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크게 4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자국의 국방력을 증강해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믿을 수 있고 능력 있는 동맹국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또 다자체제를 통해 ‘집단안보체제’를 만드는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증가시켜 ‘매력 국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국방력을 키우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국제사회는 우리 경제력에 맞는 국제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의 유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한편 그동안 부족했던 다자외교를 발전시키고 ‘매력 국가’ 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대한민국의 안보 여건이 유리하게 조성되고 한반도에서 극단적인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줄일 수 있다.
스위스는 군사적으로 약소국이지만 다자외교와 ‘매력 국가’ 만들기를 통해 자국의 안보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나라다. 스위스에 위치한 대형 국제기구만 해도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20여 개에 이른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에 영세중립국이라는 평화국가 이미지가 더해져 세계인들에게 한번은 가 보고 싶은 매력 국가로 손꼽힌다. 스위스가 인접 국가의 군사적 공격을 받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스위스를 군사적으로 공격하면 엄청난 국제적 비난과 제재뿐만 아니라 스위스에 우호적인 세계인들의 심정적 저항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매력 국가’가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이다.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함으로써 한국도 스위스처럼 다자외교의 중심지로, 또 매력 국가로 발돋움해 안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최근 드라마, 한식, 영화, 케이팝 등 한류 소프트 파워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한국도 아시아에서 ‘한번은 가 보고 싶은 나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라는 인류문명에 대한 중대한 도전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효율적인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프트 파워 콘텐츠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역량에 맞게 기여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적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