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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은 법의관 “내겐 망자 인권 지키는 게 더 가치있는 일”

입력 | 2012-11-03 03:00:00

‘과학수사의 날’ 대상 받은 정낙은 국과수 법의관
삼풍사고 뒤 대학병원 의사서 진로 바꿔




여섯 살 어린아이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아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한국을 떠났던 엄마는 몇 달 만에 발견된 아들의 시신 앞에 섰다. 마지막 순간, 장난감을 사달라며 애교를 부렸던 아들의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부검을 마친 의료진은 그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아들 시신을 끌어안고 “왜 이제야 왔느냐”며 울부짖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정낙은 법의관(55·사진)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후 시신 수습을 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뒤 인생의 경로를 바꿨다. 대학병원 의사에서 법의관으로 전향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삼풍 사고 당시 500여 명이 죽었는데 100명 이상의 신원을 결국 확인해주지 못했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 기막힌 사연이 그렇게 많았는데…. 과학수사와 대형사고 처리체계가 잘 갖춰졌다면 가족의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아픔은 덜했을 겁니다. 망자의 인권을 지키는 게 의사로서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의학에 투신한 정 법의관은 18년간 4000여 건을 부검했다. 특히 대형 참사 때 시신의 신원을 최대한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진력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2007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 재난재해 때마다 그는 국과수 법의관들과 함께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그는 인도네시아 쓰나미 당시 숨진 우리 국민 20명의 신원을 피해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확인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시신을 빨리 찾아 유족에게 넘기는 게 희생자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유족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정 법의관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과학수사의 날’ 기념식에서 법의학 분야 대상을 받았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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