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文-安의 다리 불사르기 경쟁
그러나 추석 지난 지가 한 달이 넘었지만 세 후보의 여론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3자대결에서 박 후보는 40%대 초반, 안 후보와 문 후보는 25% 근처에서 안 후보가 약간 앞서가는 중이다. 추석 전 안 후보의 출마 선언으로 시작된 ‘대선 삼국지(三國志)’가 본격적으로 정립(鼎立)되는 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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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의 게임이론을 2012 대선 삼국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를 저지하고 문 후보부터 공략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까? 안 후보와 문 후보는 단일화로 박 후보에 맞서는 게 최선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박 후보와 문 후보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지만 안 후보에게는 아니다.
먼저 안 후보와 문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는 경우부터 살펴보자. 이때는 적벽대전의 동남풍(東南風)처럼 외부 환경의 변화가 승패를 결정지을 개연성이 크다. 예를 들면, 만약 부산 경남에서 동남풍이 불어온다면 단일 후보가 이길 확률이 높고, 반대로 평양에서 북서풍이 불어온다면 박 후보가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야권 단일 후보로서의 경쟁력은 안 후보와 문 후보 중 누가 더 높을까? 지금은 안 후보가 조금 더 높게 나오지만 곧 추월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후보 검증과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될수록 지지층의 충성도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당과 ‘노빠(노무현 지지자)’는 충성도가 높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에 비해 안 후보가 정치적 ‘신상(새로운 상품)’이라 선택한 지지자들의 충성도는 낮다.
이를 염려한 안 후보는 “이미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며 후보 단일화의 승리와 대선 완주를 ‘약속(commitment)’했다. 하지만 문 후보 역시 이틀 전 새누리당이 제안한 대선후보 중도사퇴시 선거보조금 환수 법안의 수용 의사를 밝혔다. 건너온 다리를 안 후보보다 더 확실하게 불살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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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불사르기 게임’의 승자는 약속의 ‘신뢰성(credibility)’을 확보한 쪽이다. 지금 좌파(左派) 시민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은 두 후보가 불사른 다리의 복구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문 후보 측 다리의 복구 시도는 ‘노빠’와 민주당이 막아줄 것이다. 따라서 문 후보 약속의 신뢰성은 높다. 반면 그런 정치세력이 부족한 안 후보 측 다리는 복구될 가능성이 크다. 안 후보가 단일화의 승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어쩌면 안 후보는 이번 단일화 게임을 양보하더라도 5년 뒤 대선을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대선이 끝나면 ‘신상’으로서의 그의 신비감은 사라진다. 게다가 그가 키운 박원순 서울시장이 ‘호랑이 새끼’가 되어 5년 뒤 그를 잡아먹으려 들지도 모른다. ‘권력은 부자(父子)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그렇다면 안 후보가 단일화를 외면하고 대선을 완주하면 어떻게 될까? 3자대결이면 박근혜 후보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그 경우 안 후보의 정치생명은 바로 끝난다. 다만 박 시장처럼 차기 대권을 노리는 민주당의 잠룡(潛龍)들에겐 그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다음엔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 후보가 일찍부터 대권에 관심이 있었다면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그가 박 시장에게 양보하지 않고 보궐선거에 나갔더라면 당선됐을 것이다. 그리고 시장직을 발판으로 민주당의 지지를 확보하고 충성도 높은 정치세력을 모았다면 차기 대권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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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igkim@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