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백복도
① 문자보다 회화적인 이미지가 더 강조된 백수백복도. 기물에 문자를 새겨 넣는 방식으로 표현 영역을 넓혔다. 가로 29cm, 세로 102cm, 계명대 행소박물관. ②③ 자수 백수백복도. 여러 모양으로 이뤄진 수(壽)와 복(福)자의 전서를 좌우로 정연하게 배치해 현대 타이포그래피 못지 않은 조형미를 보여준다. 오른쪽 그림이 ‘복’자이고 왼쪽 그림이 ‘수’자 다. 가로 39.0cm, 세로 122.5cm, 한국자수박물관.
○ 그림 같은 문자
백수백복도는 전서(篆書)로 표현한 그림이다. 전서는 사물의 형상을 간략하게 기호화한 갑골문에서 시작된 서체라 회화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탓에 종류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다. 진시황은 통일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서체를 비롯한 문화적 통일을 추진했다. 그 임무를 맡은 승상(정승과 같은 지위) 이사(李斯)는 복잡한 전서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지방마다 달리 쓰이던 여러 서체를 하나로 통합했다. 이를 ‘소전(小篆)’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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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백복도는 임진왜란 이후 중국에서 전래됐다. 1610년 남평현(지금의 전남 나주시 남평읍 일대) 현감인 조유한(趙維韓·1588∼1613)이 전주에서 중국인에게 받은 백수도(百壽圖)를 광해군에게 바친 것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백수백복도라 전해진다. 이후 궁중을 통해 이 그림이 제작됐는데 그 흔적은 창덕궁에 있는 백수백복도를 비롯해 궁중화원인 이형록(李亨祿·1808∼?)이 그린 백수백복도(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궁중의 상궁이 기증한 부산 범어사성보박물관 소장 ‘자수 백수백복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자수박물관에도 자수로 만든 백수백복도가 소장돼 있다. 잡체전으로 표현된 이 병풍은 모두 288자로 꾸며져 있으며 한 폭에 36자씩 8폭으로 구성돼 있다. 직선의 획으로 구성된 서체와 자유로운 곡선으로 이뤄진 서체를 짜임새 있게 배치하고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 자주색 옥색 등을 적절하게 써 다채롭고 풍요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정교하게 마무리한 수결과 바늘땀, 고급스러운 색상 배합에서 궁중 자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 문자와 이미지의 화려한 만남
민화 백수백복도(계명대 행소박물관 소장)는 앞의 작품과 달리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수’자와 ‘복’자가 번갈아 배치돼 있는데 잡체전의 전서 이외에 새, 개구리, 신선, 꽃, 가지, 책, 그릇, 호리병 등 자연의 이미지도 활용해 ‘수’자와 ‘복’자를 표현했다. 생물과 사물로 어떻게 문자를 나타냈는지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그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 전체를 글자 모양으로 구성하기보다는 그림 중 일부인 기물에 문자를 새겨 넣는 방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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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잡체전으로 백수백복도를 구성해야 한다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백수백복도의 표현 영역은 한없이 넓어졌다. 새로운 형식을 찾아낸다면 굳이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풍요롭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세계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다양한 문자의 세계를 다채로운 이미지의 세계로 전환한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 덕분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정한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세상에서 상상력은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원동력이 된다.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그 흔한 염원을 흔하지 않게,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화가의 아이디어가 민화 백수백복도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문화재학)·한국민화학회 회장 chongpm@g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