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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권재현]‘고슴도치’ 카 vs ‘여우’ 벌린

입력 | 2012-10-25 03:00:00


권재현 문화부 차장

올해 흥미로운 책 두 권이 나란히 번역됐다. 냉전시대 영국 지성사를 대표하는 맞수의 평전이다. 한 명은 영국 중산층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를 나온 국제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다. 다른 한 명은 부유한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옥스퍼드 출신의 정치사상가이다.

‘역사는 무엇인가’의 저자, E H 카로 더 유명한 에드워드 핼릿 카(1892∼1982)와 적극적 자유에 맞서 소극적 자유의 진가를 옹호한 자유주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1909∼1997)이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선 카의 명성이 압도적이지만 21세기 들어 벌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라이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둘은 마르크스의 전기를 쓴 최초의 영국인이었다. 카는 1934년, 벌린은 1939년 마르크스 평전을 발표했다. 카가 러시아혁명사의 권위자라면 벌린은 러시아지성사의 권위자였다. 수많은 러시아 사상가 중에서 알렉산드르 게르첸을 흠모했으며,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준 낭만주의 연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는 점도 빼닮았다.

러시아 영향하에 있던 발트 해 국가 라트비아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벌린은 라트비아 태생으로 러시아어가 모국어나 다름없었다. 카는 라트비아 주재 영국공사관에 근무하면서 러시아어를 익혔고 러시아 혁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 언론을 통해 대중적 명성을 쌓은 점도 닮았다. 카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2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벌린은 2차 대전 때 미국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외교활동을 펼쳤다. 카는 2차 대전 기간에 더 타임지 논설위원으로 필명을 날렸고 벌린은 2차 대전 직후 열정적인 BBC 라디오 강연으로 ‘강단의 파가니니’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상적 지향점은 대조적이었다. 카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소련에 경도된 반(反)자유주의자였다. 벌린은 좌파 사상가들을 계속 기웃거리면서도 반소친미(反蘇親美)의 자세를 견지한 자유주의자였다.

성장 배경의 차이가 컸다. 카는 1차 대전 전후로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가 쇠퇴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냉철한 현실주의에 눈을 떴고 1917년 소비에트 혁명을 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으로 여겼다. 벌린은 그 소비에트 혁명에 환멸을 느껴 영국으로 망명한 뒤 가장 영국적인 사상으로서 자유주의의 숨겨진 진가를 재발견했다.

카는 역사 연구에서 개인의 도덕적 감수성과 상관없이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행로를 냉철하게 직시할 것을 역설했다. 벌린은 카가 잠시 경도됐던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결정론적 역사관을 맹비판하며 역사의 이면에 작동하는 사상이 지향하는 가치를 중시했다. 카의 대표작 ‘역사란 무엇인가’는 연배는 어려도 학계 영향력은 더 컸던 벌린의 비판에 대한 응수로서 탄생한 것이었다.

기질 차도 크게 작용했다.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란 책에서 하나의 명쾌한 거대담론을 추구하는 신념에 찬 일원론자를 고슴도치로, 수많은 사상을 편력하면서도 어느 하나에 안주할 줄 모르는 회의적 다원주의자를 여우로 불렀다. 30년간 방대한 분량의 ‘소비에트 러시아사’(14권)를 파고든 카가 고슴도치에 가깝다면 다양한 주제에 소론 형식의 강연록을 선호한 벌린은 여우에 가깝다.

사람들은 보통 여우보다 고슴도치를 더 잘 기억한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은 두 사람의 학문적 성과와 별개로 분명 여우의 승리였다. 냉전이 끝난 지금 당신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   

[바로잡습니다]

@뉴스룸 칼럼 ‘고슴도치’ 카 vs ‘여우’ 벌린에서 소비에트 혁명이 발생한 해는 1919년이 아니라 1917년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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