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사회硏 579명 분석
오전 7시가 되면 첫째 손녀딸(5)이 어린이집 원복을 입도록 돕는다. 밥 차리는 일과 손녀 돌보는 일을 동시에 하기가 버거워 일단 TV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를 틀어놓는다. 보채는 아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다.
이즈음 일어난 김 씨 부부는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한다. 둘째가 울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지만 시간에 쫓겨 밥을 먹고 총알같이 나간다. “엄마 미안해. 고마워요”라는 말만 남기고.
김 씨가 2007년 결혼했을 때만 해도 신혼집은 부모 집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친정 근처로 옮긴 것은 2년 전. 한집에서 살고 싶지만 아파트가 좁아 그렇게는 못했다. 대신 층만 다를 뿐 같은 아파트에 산다. 애를 키우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오후 7시가 되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갑작스러운 야근이라도 생기면 낭패. 결국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친정 부모가 보육을 도맡을 수밖에 없다.
김 씨는 “부모님께 죄송스럽지만 살림을 합치지 않았더라면 둘째는 절대 못 낳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친정어머니만큼 든든한 버팀목이 없어서일까. 김 씨처럼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면 첫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고 가임 기간 중 낳는 아이의 수가 더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1일 발간한 ‘부모 동거가 첫째 자녀 출산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는 여성의 첫아이 출산 확률이 그러지 않는 경우보다 2배 이상 높았다. 20∼39세 초혼 여성 579명의 출산아 수와 출산 시기를 담은 ‘한국노동패널’ 10년 치(1998∼2008년) 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반면 시부모나 친정아버지와의 동거 여부는 첫 출산과 별 상관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친정살이가 꼭 편하지는 않고,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네이버의 육아커뮤니티인 ‘맘스홀릭’ ‘레몬테라스’와 다음의 여성커뮤니티인 ‘미즈넷’에는 “괜히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했다”며 후회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ID ‘wonlove9’는 “여자들이 시댁을 어려워하듯이 친정 부모와 함께 살면 남편이 힘들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모의 잔소리가 오히려 부부 갈등을 증폭시킨다거나 오붓한 시간이 없어져 임신 및 출산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