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센슈얼리티’ 코드, 세계 4대 컬렉션 휩쓸어1960년대 룩-동양적 영감, 패션 주류로 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하우스 ‘크리스티앙 디오르’에서 첫 기성복 데뷔 무대를 갖게 된 라프 시몬스는 이번 쇼의 테마를 ‘해방’으로 정했다. 시몬스 본인의 주특기인 미니멀리즘 스타일에 대한 해방도 포함된다. 그래서 탄생된 이번 컬렉션에는 여성스럽고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들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제공
두 거물이 나란히 경쟁 브랜드를 대표해 도전에 나선 이례적 상황인 만큼 두 사람의 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춘 파리 컬렉션발 외신 기사도 쏟아져 나왔다. 우먼스웨어데일리는 두 사람의 사진과 함께 파리 패션계의 얼굴이 바뀐다는 의미의 ‘파리 페이스오프(face-off)’란 제목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챔피언끼리의 경쟁’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시몬스는 미니멀한 브랜드인 질샌더의 부활을 이끈 주인공이다.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와 완벽히 단절하기 위해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시몬스를 택했다는 얘기가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온 바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 갈리아노가 ‘스타병’ 환자라면 시몬스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할 만큼 두 사람의 유전자는 완전히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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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디자이너들의 이적이 화제가 되며 업계 전체가 술렁인 올해는 특히 ‘전환의 해’로 기록될 듯하다. 불황, 그 속에서 부르짖는 희망, 새 임무를 맡게 된 스타 디자이너들의 중압감 등이 무지개처럼 흩뿌려지며 내년 봄·여름은 또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기약하게 됐다. 트렌드 정보사 인터패션플래닝의 조언으로 4개 컬렉션에서 선보인 주요 테마를 정리했다.
뉴 센슈얼리티
내년 봄·여름에는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여성성이 더욱 부각된다. 2012년 봄·여름에 대거 등장했던 ‘레이디 라이크 룩’이 아니라 힘 있는 파워우먼의 자태가 다양한 감성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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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슈얼한 요소를 다양하게 풀어낸 그의 컬렉션은 주로 평론가와 패션 매체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브생로랑
‘파워 숄더’로 몇 해간 패션피플의 관심을 끌었던 발맹은 어깨에 힘을 준 ‘와이드 숄더 재킷’, 또 반대로 여체의 굴곡을 살린 ‘보디 컨셔스 실루엣’에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또 캘빈클라인은 심플하면서도 섹시한 드레스에 건축적인 라인을 더해 지적인 매력이 돋보인 컬렉션이라는 평을 받았다. 발렌시아가는 초미니 하의, 비대칭적 라인, 과감한 노출 룩을 종합선물세트처럼 선보이면서 전반적으로 섹시한 느낌의 무대를 선보였다.
속이 비치는 시어 소재를 대거 사용한 점, 또 코르셋을 겉옷처럼 입은 뷔스티에 스타일의 상의가 많이 등장한 점도 센슈얼한 요소로 지목됐다. 인터패션플래닝은 특히 시어 소재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드레스, 스커트, 팬츠, 심지어 외투에도 사용된 시어 소재는 내년 봄여름 컬렉션의 핵심 요소로 부각됐다.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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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대표 아이콘인 미니스커트 역시 다양하게 선보였다. 체크무늬는 때로는 세로 스트라이프로 변형돼 늘씬한 느낌을 주는 요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모델들이 들고 나온 핸드백은 LV 로고와 벚꽃 모티브가 담긴 모노그램 라인보다 체크무늬처럼 보이는 다미에 라인에서 변형된 것이 더 많았다. WWD 등 패션매체들은 이를 두고 “컬렉션과의 통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품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인 등 신흥시장 고객들이 더는 LV 로고 플레이에 감동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성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뉴욕 컬렉션에서 자신의 이름을 달고 선보이는 ‘마크제이컵스’ 쇼에서도 그래픽적인 요소들이 그대로 묻어났다. 좀 더 섹시하거나 캐주얼한 버전의 의상을 선보였다.
뉴욕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1960년대를 풍미한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에서 영감을 받았다. 블랙, 레드, 옐로 등 강렬한 색상을 대담한 프린트와 함께 매치하면서도 촌스럽거나 과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의 재주일 터.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역시 분홍과 회색이 교차되는 투피스를 고상한 버전으로 풀어냈다. 샤넬 쇼에서 많은 이의 시선을 모은 오브제 중 하나는 모델이 어깨에 걸치거나 손에 들고 나온 훌라후프였다. 자세히 보면 아랫부분이 가방이다. 만약 이 아이템을 내가 구입하게 된다면 훌라후프로도, 가방으로도 쓰기 아까울 듯. 미술작품처럼 벽에 곱게 걸어놓고 바라만 볼 것 같다.
밀라노에서도 1960년대의 키치적 분위기를 녹인 60년대 파워가 눈에 띄었다. 모스키노, 프라다 등이 패턴 전반에 걸쳐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면서 팝아트적 분위기를 냈다. 베르수스는 대담한 기하학적 패턴을 선보였다. 다이아몬드 패턴을 다양한 색상으로 풀어낸 디자인은 어딘지 모르게, 복고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느낌도 냈다.
아시아
프라다는 오리가미 등 일본을 연상하게 하는 스타일을 대거 무대에 올렸다. 인터패션플래닝 제공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는 유럽과 미국을 대신할 희망은 역시 동양이었을까. 과거 영감의 원천으로만 생각해 가늘게 눈을 뜨고 동쪽을 바라봤던 서양 디자이너들은 이제 좀 더 애절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동쪽, 동양을 외치고 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