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문화부 차장
#SBS ‘런닝맨’에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 ‘공간을 지배하는 자’와 같은 초능력 캐릭터가 나온다. 문화 분야에도 이런 도구가 있다. 바로 번역이다. 국내에는 번역사업을 지원하는 두 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한국문학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문학번역원(KLTI)과 우리의 고전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ITKC)이다. 전자가 우리 문학의 ‘공간적 확장’을 지원한다면, 후자는 우리 고전의 ‘시간적 영속성’을 가능케 하는 기관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중국 작가 모옌으로 발표되자 일부 미국 언론은 “번역가 하워드 골드블랫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썼다. 미국 노터데임대 중문과 교수인 골드블랫은 1970년대부터 모옌의 ‘붉은 수수밭’, ‘술의 나라’, ‘생사피로’ 등을 비롯해 중국 현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서방에 소개해 온 독보적 존재였다. 그는 번역에서 양보다 질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다. 그는 “중국어는 잘 모르면 작가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영어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는 “번역가가 최우선시할 대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라고 선을 그었고, 모옌도 “번역된 작품은 더는 작가가 아닌 번역자의 것”이라고 화답했다.
광고 로드중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우선 좋은 콘텐츠를 창작하고, 해외에 적극 알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수천 년간 쌓아 온 지식문화의 보고인 고전이 한문으로 돼 있어 제대로 창작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조선왕조실록은 완역했지만 승정원일기는 9.6%, 일성록은 14.6%밖에 번역해 내지 못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 번역지원한 문학작품은 800여 종에 불과하다. 일본의 2만250종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두 기관의 올해 예산은 각각 127억 원, 78억 원에 불과하다. 내년에 4조 원대에 육박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