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흐르게 하고 불은 타오르게 하라!
고미숙 고전평론가
지혜와 열정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몸의 원리다. 먼저 지혜는 물(水)이다. 오장육부 가운데 신장의 기운에 해당한다. 신장의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정력의 원천이다. 존재를 뒤흔드는 폭풍 같은 에로스도, 죽음을 불사하는 전투적 의지도 다 여기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인생과 자연에 대한 지혜가 샘솟는 곳이기도 하다. 신장의 물이 척추를 타고 올라가서 뇌를 흠뻑 적셔 주어야만 뉴런들의 활발한 접속과 변용이 가능하다. 그것을 일러 이른바 ‘상상력’, ‘창조력’이라고 한다. 결국 뇌 또한 신장의 연장인 셈이다. 따라서 지혜를 닦는 것은 곧 신장과 뇌로 이어지는 생리적 루트를 활성화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혜의 물을 활발한 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 곧 열정이 필요하다. 심장의 화(火)가 그것을 주관한다. 신장의 물을 펌프질하여 전신에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 하는 역할이다. 이 불꽃이 정미하게 타오르면 열정이 된다. 제멋대로 타오르면 허열(虛熱)이 된다. 열정은 솟구치지만 허열은 망동한다. 허열에서는 아무런 창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방 아니면 표절. 열정과 허열을 구별하지 못하고, 지혜와 잔머리를 혼동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이런 식의 순환과 변주는 연암과 다산 같은 거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 지혜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열정을 통해 그 네트워크에 힘을 불어넣는 것,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는 없는 법이므로. 그렇다. 지혜와 열정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특권이자 소명이다. 그러니 물은 흐르게 하고 불은 타오르게 하라! 운명애를 터득하는 길도 다만 거기에 있을 뿐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