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정치부장
안 원장이 26세의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으로 서울 사당동에 재개발 아파트를 소유한 게 허물은 아니다. 부산에서 오래 병원을 해온 집안이 결혼한 아들에게 집을 사주는 게 그다지 이상할 것 없다.
문제는 그의 언어다.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해봐서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안철수의 생각’)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아, 안철수가 오랫동안 집 없이 전세살이를 했구나’라고 이해한다. 그게 ‘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보통사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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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강북의 집은 전세를 주고, 강남에서 전세살이를 한다. 솔직히 전세살이가 편치 않다. 그렇다고 ‘집 없는 설움’을 들먹이진 않는다. 사실이 아니니까. 더구나 안 원장은 결혼 첫해부터 집을 소유했고, 지금은 ‘황제 전세’ 논란이 이는 곳에 살고 있지 않은가.
뭐, 모친이 판자촌 재개발 ‘딱지’를 매입했으면 또 어떠랴. 그땐 1988년이니까. 딱지를 사서 아파트에 입주하는 게 흔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주민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논리만으로 밀어붙이다가 용산참사 같은 사건을 초래했다. 앞으로는 도시를 재개발할 때 세입자 등 상대적 약자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하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생애 첫 자기 집을 재개발 딱지를 통해 마련한 이가 마치 ‘남 얘기하듯’ 훈계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이 사당동 아파트와 1993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를 부모 돈으로 장만하고, 서울 이촌동 장모 명의 아파트에 거주했던 일도 큰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역시 문제는 그가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못 박은 것이다.
집 문제만 살펴봐도 안 원장에겐 이처럼 적지 않은 언행 불일치가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행동에는 별 잘못이 없다. 말을 너무 ‘고상하게’ 하는 바람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보면 이런 고상한 말 천지다. 이 책이 정치 외교·통일 경제 사회 문화 등 한국사회 전 분야에 대한 ‘안철수의 고상한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사외이사나 단란주점 논란, 군 입대 일화 등에서 보듯 그가 책이나 예능프로에서 풀어놓은 많은 ‘순수한 언어’들은 역으로 그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상한 언어가 족쇄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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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 원장이 땅으로 내려와 링에 올라야 할 날이 다가왔다. 그가 늘어놓은 ‘고상한 언어’를 현실화시킬 정치력이 있는지 보일 때가 됐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야구선수가 되려다 실패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일화를 얘기했다.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다. 정치는 과연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 곧 드러나겠지만,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대선은 겨우 3개월 남았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