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환규 의협회장의 고백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의협 집무실에서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보건의료 정책을 바꾸고 의사면허를 관리하는 공적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는 듯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 의사단체의 수장으로서 의사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래야 의료제도의 새 판을 짤 수 있고, 세상이 달라진다고 고백했다.
○ 의사들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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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1시간 반 하는 동안 충격적인 내용이 그의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의사단체 수장이 맞나 싶을 만큼 적나라했다.
노 회장은 “국민에게 의사들이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이런 문제를 감췄다는 뜻이다. 위험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돈 되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면서. 새로운 의료기술이 나오면 잘할 때까지 수술을 한다는 의사의 사례도 전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로 표현되는 진료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의사지만 자신도 이런 불성실 진료의 피해자라고 했다.
“25년 전 만삭이던 아내는 통증이 심해 대학병원을 찾아갔습니다. 혼자 진통을 참으며 2시간을 기다렸지만 의사는 건성건성 차트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의 탯줄이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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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 의료제도가 만드는 악순환?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노 회장은 “일차적으로는 의사의 잘못이다. 그러나 의료현장이 그만큼 왜곡돼 있기에 이런 일도 일어난다. 국민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의를 보이지 않고 대충대충 하는 진료 태도, 제대로 수련받지 못한 의사들, 돈이 되는 비급여 수술만 권하는 의료기관, 전공과목과 상관없이 미용과 성형수술만 하려는 의사….
의료서비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수가를 책정하니까 이런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환자를 불성실하게 대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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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건강보험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험 재정만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제대로 된 장비를 쓰지 못하고 죽는 환자가 생길 수 있다면서.
노 회장은 의사가 제대로 진료하려고 해도 나중에 진료비를 환수당할까 봐 ‘적정한 선’에서 진료를 하고 침묵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 자정선언을 시작으로 의사 거듭나야
의협의 자정선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노 회장은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짧고 굵게.
그는 일부 의사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잘못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나의 동료를 형제자매로 여기겠노라’는 부분을 동료 의사의 잘못까지 덮어 주는 식으로 해석한다는 뜻. 의협이 전문가 단체로서 국민의 존중과 신뢰를 받으려면 이 점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의협은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의사의 인적사항을 법무부에서 통보받아 징계하기로 했다. 또 의료인의 면허 관리를 전담하는 독립된 공적 기구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관계 부처를 상대로 이런 기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의료법 개정을 요청할 방침이다. 현재는 의료인의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복지부에 있다. 면허 전담 기구와 관련해 노 회장은 “선진국은 의료인의 비중이 절반 정도다. 나머지를 시민, 법조인으로 구성한다”고 말했다.
의협은 또 자정선언을 바탕으로 세밀한 내용을 담은 의사윤리강령을 만들 계획이다. 범죄는 아니지만 문제가 될 만한 진료 행위나 의료 신기술에 대한 기준도 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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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