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원작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에서 시드니 카턴(류정한)의 루시 마네트(최현주)에 대한 사랑은 세속적인 것에서 종교적인 것에 가깝게 변해간다. 카턴은 마네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데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커다란 평온을 얻는다. 컴퍼니다 제공
2008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점은 맞는데, 공연 횟수는 33회의 프리뷰 공연에 60회의 본공연이 전부여서 사실 브로드웨이 흥행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런 데다 이번 공연 포스터는 우중충한 색깔의 유럽 18세기풍 건물만으로 꾸몄고, 제목 ‘두 도시 이야기’만으로도 심심한데 부제로 ‘18세기 런던과 파리’를 붙여 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공연장에 입장하면서 졸 준비부터 했다. 하지만 공연을 다 본 뒤 이번 국내 공연 기획자의 안목에 감탄하게 됐다. 지루함을 주는 마케팅도 예상 밖의 놀라움을 위한 전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잘 짜인 스토리, 훌륭한 음악, 배우들의 열연…. 단연코 이 공연은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저주받은 명작’이다.
공연은 마네트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는 카턴의 헌신적인 사랑을 주요 줄기로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그 속에서 갖가지 사연으로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이 이야기를 매우 풍부하게 만들었다.
철골 구조물 몇 개를 배우들이 무대에서 직접 움직이며 조합해 펼쳐내는 다양한 무대와 이를 배경으로 임팩트 강한 장면들이 관객에겐 여러 감정을 선사했다. 카턴이 마네트에 대한 사랑을 홀로 고백할 땐 애절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에버몽드 후작이 일반 민중을 무자비하게 대할 때는 분노를, 파리 시민들이 봉기할 땐 통쾌감을 줬다. 카턴이 죽음 앞으로 걸어갈 땐 가슴 한쪽이 서늘하고 숙연해졌다.
음역대가 폭넓고 아름다운 32곡의 뮤지컬 넘버들은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면서 잃은 디테일을 보완했고 배우의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에 깊이를 만들었다. 배우들의 가창력이 대체로 좋았지만 시민 봉기를 이끄는 마담 드파르주 역의 신영숙, 주인공 카턴 역의 류정한은 발군이었다.
: : i : : 주요 배역엔 윤형렬(시드니), 카이(찰스), 임혜영(루시), 이정화(마담 드파르주)가 번갈아 출연한다. 질 산토리엘로 작·작곡. 한진섭 연출. 10월 7일까지. 5만∼12만 원. 1577-3363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