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여성동아팀장
그냥 좋아서 시작한 바느질이었지만, 외항선 타는 남편이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올까말까 하던 시절에는 바느질이 마음 수양이 됐고, 그러던 남편이 아예 집을 떠나버렸을 때는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이 됐다. 대한민국 한복 명장 1호인 김영재 할머니 이야기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노무현 대통령이 입었던 황금색 두루마기도 그의 손으로 지은 것이다.
유난히 입이 짧고 뭔가 먹기만 하면 탈이 나는 소녀가 있었다. 그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밥과 김치였다. 그마저도 “이번 김치는 너무 맵고” “이번 것은 짜고” “덜 익었네” “시어졌네” 하면서 까탈을 부리기 일쑤였다. 너무 예민한 미각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대꼬챙이처럼 말라가는 아이가 안쓰러워 어머니와 할머니는 온갖 맛있다는 김치는 다 담가주었다.
광고 로드중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 ‘살림이 좋아’라는 책이 인기다. 저자인 이혜선 씨(41)는 결혼 8년 차로 4년 전 직장을 그만뒀다. 하지만 자신은 직장 생활을 그만둔 게 아니라 직장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집이 직장이 된 셈이다.
남편이 출근하면 그는 매일 집으로 출근해(?) 그의 업무인 살림을 시작한다. 베란다 가드닝부터 핸드메이드 소품, 센스 있는 수납공간 등 이 씨의 손길이 닿은 집 안 구석구석은 눈요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살림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뿐 아니라 집안을 살리는 일, 가족을 살리는 일”이라는 이 씨의 말에서 ‘살림의 달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일로 달인이 되고, 장인이 되고, 명장의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여성동아를 만들면서 매달 이런 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9월호에서는 텃밭과 베란다에서 농산물을 재배하고 아이들에게 생태 교육을 하는 도시 농부 3인에게서 체험에서 우러난 농사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들에게 농사는 육체노동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요, 예술이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손으로 하는 일을 과소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워 담기 바쁜 소비자가 아니라, 텃밭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생산자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지구를 살리자는 거창한 구호 대신 두 팔과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