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 뉴욕 특파원
미 최대 상업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지난주 뉴욕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저명인사가 공개적으로 ‘퍼킹(fucking)’이라는 비속어를 입에 담았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JP모건체이스가 수십억 달러의 파생금융상품 손실을 낸 이후 언론의 집중포화에도 절대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문제의 발언은 최근 은행가 모임의 분위기를 전하는 가운데서 나왔다. 행사에 참석한 수백 명의 은행가 가운데 85%가량이 미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금융개혁 방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이먼 회장은 인터뷰에서 “여기는 소련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미국이다. (월가를 공격하는 것에 관련해) 전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며 절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 냈다. 그는 ‘월가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미 정부의 금융개혁 조치에 맞서 온 대표적인 인물. 그가 평상심을 잃은 것은 최근 이곳 금융인들의 초조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뢰 추락의 후폭풍은 여러 방면에서 목격되고 있다. 월가의 터줏대감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한 투자설명회에서 뉴욕에 굳이 큰 사무실을 둘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설명을 했다.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미국 금융회사마저 월가의 인력을 다른 도시로 재배치하며 짐을 싸고 있다.
월가가 휘청대는 사이 반사이익을 챙기는 곳도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변방이다가 최근 건실한 자국의 경제상황으로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노르웨이 금융회사가 대표적이다. 뉴욕 맨해튼에 사무실을 둔 노르웨이 최대 은행인 DNB 미국지사는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월가에서 해고된 전문 인력을 손쉽게 끌어모으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꿈꾸고 있는 한국도 이곳의 넘쳐 나는 금융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금융감독원과 국내 금융회사들이 다음 달 22, 23일 뉴욕 맨해튼을 찾아 채용 설명회를 연다.
인재를 끌어모으는 것도 좋지만 월가의 최근 수난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으면 한다. 첨단 선진 금융 기법과 유능한 인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대출금리의 근간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담합한 혐의가 금융권의 초대형 뇌관으로 잠재해 있는 한국으로선 더욱 그렇다. 월가 금융인들에겐 가당치 않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월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여전히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