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중순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 행사.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월드컵 열풍을 타고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를 넘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턱 밑까지 추격하던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은 “정몽준! 정몽준!”을 연호했고, 옆에 있던 노 후보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에 따르면 9월 평균 정 의원 지지율은 31.4%로 노 후보(20.7%)를 제치고 이 후보(35.1%)의 지지율에 육박했다. 이후 정 의원은 지지율 거품이 빠져 그해 11월 노 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노무현 단일후보’가 탄생했다. 월드컵이 2002년 대선 정국의 결정적 변수 중 하나로 작용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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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은 물론이고 박근혜 의원이 독주하는 새누리당 경선도 좀처럼 이슈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한 미디어전문지의 분석에 따르면 올림픽 개막일인 7월 28일부터 이달 6일까지 10일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 중 올림픽 관련 아이템은 전체의 61.6%였다. 대선 관련 보도는 대부분 단신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올림픽 전에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한껏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잠행에 들어갔다. 이쯤 되면 ‘치고 빠지기(hit and run)’ 전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명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논란이 되는 등 ‘악재’가 터졌지만 그 여파가 크지 않았던 것도 올림픽과 무관하지 않다.
안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7월 24일) 직후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은 39.1%, 안 원장은 31.2%였지만 올림픽 개막(7월 28일) 직후의 리얼미터 조사에선 박 의원이 35.2%, 안 원장이 34.0%였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원장으로선 지지율이 떨어질 소재가 있었지만 올림픽 영향으로 하락 시점이 늦춰지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안 원장은 올림픽의 최대 수혜자”라고 평가했다.
물론 10년 전 월드컵처럼 올림픽이 끝난 뒤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원장이 올림픽으로 검증 공세를 피하고 지지율 유지 효과를 누린 동시에 ‘안철수의 생각’ 발간 이후 계획했던 대국민 접촉 기회를 놓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안 원장이 다음 주 올림픽 폐막과 함께 정치 행보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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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