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1대 왕 영조(1694~1776). 동아일보 DB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편수관은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한 ‘영조대왕자료집’에 실린 해제 글을 통해 “영조의 아버지 숙종이 후궁이었던 희빈 장씨를 왕비로 삼았다가 후회한 것이 영조의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자진(自盡·자살)을 명한 비망기(備忘記)에서, 첩을 정실로 삼지 말라는 ‘춘추’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정성왕후가 죽고 영조가 홀아비가 됐을 때 영조에겐 영빈 이씨 등 후궁이 있었다. 당시 양반가에서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첩이 있는 홀아비라면 재혼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는 “제왕이 위로 종사(宗社·국가)를 받드는 일은 필서(匹庶·평민)와는 다름이 있으니, 하늘에게 땅이 없으면 과연 하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왕비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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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자료집’은 한중연 장서각에 소장된 영조 관련 자료를 시기별 주제별로 분류해 총 7권으로 기획한 것으로, 이번에 해제집 1권과 영인 자료집 3권이 먼저 발간됐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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