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국제부 기자
그의 노래는 나치의 구호였다. 그의 밴드는 “유대인과 흑인과 동성애자를 죽이라”고 외쳤다. 5일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시크교 사원에서 총기를 난사해 6명을 죽이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웨이드 마이클 페이지(40). 그가 속했던 밴드 ‘푸른 눈의 악마들’이 연주한 노래 제목은 ‘백인의 승리’다.
미국은 각양각색 이민자 사회가 서로 얽히며 뿌리와 줄기를 형성해 성장한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벌건 대낮에 다문화사회 가치관을 혐오하는 극우 신나치주의자가 총기학살 테러를 벌였다. 범행 후 사살된 페이지의 사진 속 표정은 1년 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학살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표정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희뿌연 눈 흰자위에 맺힌 것은 장기 경제 불황 속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극우 망령의 한기(寒氣)다.
같은 달 프랑스에서도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 국민전선(FN)이 24년 만에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4월 대선에 출마했던 마린 르펜 FN 대표는 “연간 이민 쿼터를 대폭 줄이겠다”는 약속으로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뺏긴다’고 불안해하는 불황기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독일이 불행해진 건 유대인 때문이다.”
지난 세기 히틀러가 외쳤던 이 말은 지금 세계 곳곳에 발호한 극우주의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극우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궁핍으로 고단해하던 독일 사람들이 내질렀던 환호와 똑같은 가락의 변주다.
현실의 무게에 지친 인간의 마음 위로 극우의 망령이 슬쩍 드리우는 미끼는 한결같다. ‘나의 불행은 남의 탓’이라는 달콤한 유혹. 미끼를 꿴 바늘에는 ‘증오’라는 독이 발려 있다. 인간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맹독이다.
손택균 국제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