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광고는 “아이돌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과학자가 더 많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터넷에는 이 광고를 신선하게 보았다는 트윗과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에는 꿈이 과학자 반, 대통령 반 정도 됐던 것 같다. 나중에 사춘기가 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는 현실적이 되지만, 그중에 과학자의 꿈을 계속 꾼 학생도 많았다. 필자는 의대를 가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자연과학을 선택했는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 같은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온 동급생들이 꽤 됐다. 불안하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젊은 호기가 주위의 반대마저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힘을 줬던 것 같다.
광고 로드중
대학은 ‘의전원 스펙쌓는 곳’ 전락
자연과학을 전공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 중 다수는 ‘의학·치의학·약학전문대학원’과 같은 전문대학원을 목표로 한다. 뛰어난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며, 기회를 잡지 못한 학생은 실험실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중간에, 혹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의전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심지어 박사과정을 하다가 의전원에 가는 학생도 있다. 이들은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주위에 자신이 의전원을 갈 것이라고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교수들이 물어보면 실험과학을 전공하는 과학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대답하다가 대개 마지막에 의전원에 갈 것임을 통고한다.
이들에게 대학은 의전원을 가기 위한 스펙을 쌓는 곳 비슷하다. 좋은 학점을 받고, 열심히 실험을 하고, 봉사를 하고, 여러 행사를 주도하는 것도 나중에 보면 의전원을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의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면역학, 병리학 같은 기초의학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의전원을 만든 근거였다. 그렇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예측으로 드러났다. 의전원 출신 학생들 중 기초의학을 선택한 경우는 거의 없고,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가정의학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졌다.
주위에 말을 안 하고 고시공부 같은 공부를 하다가 의전원으로 가는 학생도 문제지만, 대학에 남은 학생들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이 더 큰 문제이다. 같이 실험을 하던 학생이 훌쩍 의대로 가고 나면, 남은 학생들은 심각한 패배주의에 젖곤 한다. 심지어 실험실을 운영하는 교수들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질 때가 많다고 한다. 한 교수는 학생 다섯 명이 동시에 빠져나가면서 실험실이 와해되는 것 같았다고 토로한다. 과학은 신이 나서 해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금 의대에서도 성적을 중시하는 학생선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반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의사의 직업만족도는 최하위를 맴돌고 있으며, 이는 어려운 의대와 의전원 공부를 한 뒤에 의사가 된 사람들이 자신이 기대했던 바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대했던 것만큼 안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만큼 보수가 많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광고 로드중
실험실 남은 학생 패배주의에 빠져
지금은 부와 안정을 좇는 사람들이 의사가 되려 하고, 꿈을 잃은 학생이 실험실에서 연구를 한다. 그러나 좋은 정책을 통해 잘 유도하면, 소명의식을 가지고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와 과학의 꿈을 가진 학생들 모두가 신명나게 공부하게 할 수 있다.
의전원을 없애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지만, 의대 정원의 30% 편입제도가 미래에도 비슷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일반 대학은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이며, 의전원은 보건복지부 소관이어서 정책 조율이 쉽지 않은 요소가 있지만, 지금은 전체를 조망하는 인력양성 정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