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언덕 사라지는 유럽 경제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이른바 ‘피그스(PIGS)’ 국가들에서 촉발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의 쓰나미가 최우량국인 독일에 이어 비유로 국가인 영국까지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1978년 이래 유지해온 최고 등급을 박탈당할 위기에 몰렸다.
유럽 각국의 정책 당국자와 경제 전문가들이 연일 만나 갖가지 유로존 위기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어느 것 하나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인 독일은 다시 고조된 유로존 위기를 서둘러 종식시키기 위해 30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라고 스페인 정부에 요구했다. 자국의 부담이 늘어나는 유로본드 발행 등에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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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사라져가는 우량국
영국 통계청은 25일 영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7%라고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0.2%)를 크게 밑돌 뿐만 아니라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연속해서 ―0.3%의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영국 당국은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3750억 파운드(약 666조 원)라는 막대한 자금을 시중에 내다 풀었으나 유로존 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외신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2월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했던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실제 등급 강등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현재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로부터 모두 최고 국가신용등급을 부여받고 있다.
‘부정적 전망’은 6∼18개월 사이에 실제로 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사전 경고다. 미국과 프랑스는 지난해 S&P로부터 ‘부정적 전망’으로 하향 조정된 후 4개월여 만인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최고 국가신용등급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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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대응 아이디어는 쏟아지지만…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 위기 국가들은 ECB가 스페인 등의 국채를 시중 금리보다 싸게 사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재정긴축 등 가혹한 경제개혁을 요구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조건이 없는 데다 단기간에 재정 위기국의 자금 조달 숨통을 터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24일 ECB의 결단을 촉구한 데 이어 디디에 레인데르스 벨기에 외교장관도 25일 ECB가 국채 매입에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에발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유로존 구제금융 상설기구인 유럽안정화기구(ESM)에 은행 면허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SM이 은행면허를 받으면 ECB에서 자금을 대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인데르스 장관은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들과 만나 ECB가 유로국 정부의 차입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드라기 총재는 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글로벌투자콘퍼런스에서 “ECB는 위임받은 권한 안에서 유로를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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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드라기 총재의 발언에 대해 유럽과 미국 증권시장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 시간으로 26일 오후 11시 현재 이탈리아 MIBTeL 지수는 4.62% 오른 13,084를 기록했고 프랑스 파리(PARI) 지수(3.00%), 영국 FTSE지수(1.35%), 독일 닥스(DAX) 지수(1.74%)도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0.47% 상승했다. 다만 나스닥은 0.31% 하락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