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즐거워야 관람객도 즐겁죠”
20일 오후 경기 과천 서울동물원에서 김보숙 동물기획팀장이 알락꼬리여우원숭이를 살펴보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0일 오후 경기 과천시 서울동물원. 전시기획과 ‘동물 행동 풍부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김보숙 동물기획팀장(44·여)은 카트를 타고 동물원 이곳저곳을 훑었다. 전시시설에 이상이 없는지, 동물들이 활동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다.
김 팀장은 건국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9월 동물원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의 임무는 크게 세 가지다. 계절이나 이슈에 맞춰 관람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고 전시를 진행한다.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설계하고 동물의 습성에 맞춘 놀이도구와 시설을 기획해 활발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동물원 직원과 관람객 교육도 그의 몫이다.
먹이도 그냥 던져만 주지 않는다. 통나무 곳곳에 구멍을 뚫어 꿀을 넣어두고 곰이 계속 찾아 먹게 한다. 돼지등뼈를 높이 매달아 놓으면 사자가 힘차게 뛰어올라 뜯어먹는다. 김 팀장은 “행동을 유발하면 동물도 활동량이 늘어나 건강해지고 관람객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개관한 열대조류관은 콘크리트 천장을 유리나 망으로 바꿔 자연채광이 되도록 해주고 덩굴을 설치하는 등 아마존 밀림처럼 설계했다. 환경이 바뀌니 새들도 본능에 충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엔 새장에 갇혀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녀석들이 스스로 나뭇가지를 엮어 아파트처럼 층층이 울창한 집을 짓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길들여진 동물들이 야생에서와 다르게 반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 김 팀장은 “집짓기 선수인 비버를 위해 흙 돌 나무를 많이 가져다 놔도 처음엔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며 “동물들과 끊임없이 두뇌싸움을 펼쳐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사자 먹이의 높이도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그는 “처음에 낮게 달아놨을 땐 너무 쉬워서 금방 싫증을 냈고, 높이 달아두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동물 하나하나의 본성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동물원에서 출산 소식이 부쩍 늘어난 것은 김 팀장의 가장 큰 보람이다. 그는 “아프리카관을 야생과 비슷하게 꾸며주자 사막여우와 미어캣 부부의 눈길이 다정해져 새끼를 많이 낳기 시작했고 앵무새들도 처음으로 알을 낳고 있다”며 “가정을 꾸리고 살 만큼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