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수치 잘쓰면 공약에 대한 이해높여
수치(數値)를 잘 쓰면 복잡한 현상을 간략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을 7%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함으로써 방대한 경제상황의 비전을 압축적으로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정치인의 공약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정치인과 국민이 소통하는 데에 긴요하다. 그러나 숫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간략성, 체계성, 명료성의 이면에는 과도한 단순화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현상을 숫자로 간단히 표시할 때 얼마나 많은 것이 간과되거나 과장되겠는가. 숫자를 통한 과도한 단순화는 국민의 시야를 좁히고 “속았다”는 심정에 빠지게 하기 쉽다.
요즘 대선후보들의 통계수치에 입각한 청사진 제시는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간략성과 명료성 덕에 국민에게 잘 다가갈 수 있고 스스로 구체적 책임을 부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선거와 관련한 일정, 예산 방침, 실천 방안 등을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매니페스토는 이런 긍정성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를 추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나친 과장과 단순화, 정확성 상실 등 여러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자칫 유권자가 틀리고 과장된 숫자에 호도되고 기만당해 현안들을 잘못 인식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부정확한 결과에 환멸을 느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에 빠질 수 있다. 국정 운영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회 전체에만 해가 오는 것이 아니다. 엉터리 숫자는 결국 선거 후 국정 수행과정 내내 부메랑이 되어 당선자에게 큰 짐이 되고 리더십 발휘를 방해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경쟁적으로 경제성장률을 과도하게 높게 잡아 내걸었고 그것이 그 후 경제뿐 아니라 노 대통령의 리더십과 권위에도 부정적 여파를 초래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오남용땐 선거후 당선자에 큰 짐
요즘 많은 사람이 숫자 앞에서 주눅 들어 있다. 학생은 점수와 석차에, 대학은 순위와 예산액에, 기업은 매출액과 주식 시세에, 직장인은 연봉과 부채 액수에, 주부는 물가와 부동산 시세에 힘들어한다. 정치인마저 선거 승리에 혈안이 되어 통계수치를 오·남용함으로써 이들의 스트레스에 일조를 할 것인가.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