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없고
낄낄거릴 것도 없고
너무 배부를 것도 없고,
안다고 알았다고
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고
누구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없고
엉엉 울 것도 없다
뭐든지간에 하여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
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
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
그 어떤 모습이거나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 정현종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서울중앙우체국 옆에 설치된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작품. 플라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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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물로 삶의 덧없음과 영속성 간의 고리를 표현한 작업을 보면서 문득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그의 작품 역시 보통 사람이 쓰는 수더분한 일상어로 무상한 인생을 관조하는 깨달음을 길어 올린다. 평론가 김현에 따르면 정 시인은 ‘이 세계에서의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믿는 비관적 현실주의자이면서 이 세계의 무의미성과 싸울 수 있다고 믿는 낙관적 현실주의자’이다. 그렇게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양면성을 기반으로 삼는 시는 세상을 향해 들어올린 거울처럼 오늘 우리의 속된 마음을 고스란히 비춘다. ‘애초부터 기약된 죽음’ 앞에서 남보다 앞섰다고 우쭐대거나 왜 나만 고통스럽냐고 투정하느라, 안 그래도 사람으로 붐비는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탐욕과 어리석음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노년까지 하버드대 출신 200여 명의 인생을 추적한 장기 연구를 이어받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의 조건’이란 책을 펴냈다. 그 결론은 삶의 만족도가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시인의 직관과 통찰력은 방대한 학술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을 한 편의 시로 응축해 내기도 한다.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꽃 같은 삶, 여기에 대처해 행복을 얻는 지혜가 그 안에 오롯이 살아 숨쉰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