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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대의멸친(大義滅親)

입력 | 2012-07-13 03:00:00

大: 큰 대 義: 옳을 의 滅: 멸할 멸 親: 친할 친




‘대의(大義)’란 정의(正義)요 정도(正道)다. ‘친(親)’은 ‘친속(親屬)’이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 친속 등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로,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4년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장공(莊公)에게는 희완(姬完)과 희진(姬晉) 그리고 후궁 소생의 막내 주우(州우) 등 세 아들이 있었다. 주우는 유약한 성격의 희완과 달리 과격하고 거침이 없었다. 당시 강직한 대부 석작(石작)은 근심 어린 얼굴로 장공에게 말했다. “만일 전하께서 자식을 아끼신다면 의로움(義)을 가르쳐 사악한 길로 빠지지 않게 하십시오. 지금 주우가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것은 전하의 총애가 도를 넘기 때문입니다.” 장공은 석작의 간언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자 석작은 아들 석후(石厚)에게도 주우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공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 희완이 즉위하여 환공(桓公)이 되었다. 석작은 벼슬을 내놓고 물러났다. 주우는 기회를 틈타 환공을 시해하고 임금 자리에 올랐는데, 민심을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터였다. 주우의 이러한 처지를 걱정하던 석후는 아버지를 찾아가 무슨 좋은 해결책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석작은 아들에게 “주우가 주나라 천자를 알현하여 인정을 받으면 민심이 그에게로 쏠릴 것이다. 이 일은 진(陳)나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주우와 석후는 우선 진나라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소식을 들은 석작은 혈서를 써서 진나라에 보내 주우와 자신의 아들 석후 두 역적은 임금을 시해한 자들이니 당신 나라에 다다르면 체포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석작의 계책대로 주우와 석후가 위나라로 호송되어 왔다. 일부 대신들이 석작의 공을 인정하여 아들만은 사면해 주자고 했으나, 석작은 대역무도한 자신의 아들을 대의로 단죄하고 둘째 아들 희진을 맞이하여 위나라를 일시적이나마 안정시켰던 것이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석작의 육친불인(六親不認)의 태도를 “대의를 위해 친속을 죽임은 아마 이것을 말하는가(大義滅親, 其是之謂乎)”라고 높이 평가했다. 유독 오늘 이 시점에서 석작의 소신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