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지막 남은 단관 상영관 ‘서대문아트홀’ 문 닫던 날
1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대문아트홀의 마지막 영화 ‘자전거 도둑’ 상영을 기다리던 어르신이 김은주 대표(현수막 아래 흰 가운)가 눈물을 흘리며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극장은 서울의 마지막 단관 상영관이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1일 낮 12시 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대문아트홀(옛 화양극장) 김은주 대표(38)의 삭발식이 시작됐다. 김 대표는 아버지 김익환 전 대표에 이어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로비에 모인 300여 명이 김 씨를 격려했다. 영화 포스터를 매주 한 움큼씩 쥐어 지하철 경로석에 앉은 이들에게 건넸다는 남금희 씨(75)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울지 마세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오전 11시와 오후 1시 ‘자전거 도둑’ 무료 상영을 끝으로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단관 극장인 서대문아트홀이 문을 닫았다.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는 대형 호텔이 들어선다. 이날은 무료 상영이라 매표소는 문을 닫았다. 두 회 상영에 550여 명의 손님이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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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홀 홍보실장 이종학 씨(67)는 “팝콘이나 음료도 팔지 않아 전기세와 임대료도 충당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멀티플렉스의 경우 팝콘, 음료 판매와 입장료 수입이 비슷하지만 이 극장에서는 노인들의 입맛에 맞는 가래떡을 3개에 1000원씩 받고 구워 팔았다. 좌석에는 눈이 어두운 노인 관객을 위해 10cm 크기로 번호가 적혀 있다. 상영 중에도 문을 열어 화장실을 오갈 수 있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빌려줬다.
3년 전부터 경기 남양주시에서 2시간 반 걸려 매주 극장을 찾았다는 나종웅 씨(70)는 이곳에서 ‘마부’ ‘성춘향’ 등 50편 이상의 영화를 관람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면 왠지 위축감이 들어요. 20대 초반에 본 ‘지옥문’을 여기서 다시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건물의 1층 상가 유리창에는 이미 빨간 스프레이로 적힌 ‘철거’ 글씨가 선명했다. 극장 측은 지난해 7월 말에 건물주와 극장 리모델링을 논의했는데 두 달이 지나고 바로 재개발 결정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삭발은 투쟁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문화를 이어가고자 다짐하는 것”이라며 “단골이셨던 알츠하이머 환자 분이 병세를 회복했다며 고향에서 한라봉을 선물해왔던 추억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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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는 극장 직원 10여 명이 오가며 손님들과 손을 맞잡고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 상영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관객들은 오드리 헵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배우들의 사진과 ‘무기여 잘 있거라’ ‘사운드 오브 뮤직’ ‘로마의 휴일’ 등 포스터가 전시된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극장에서 27년 동안 일해 온 영사실장 이길웅 씨(67)는 “계단까지 관객이 들어찰 때는 하루에 6개 넘는 영화를 계속 상영했다. 극장을 매주 찾는 어르신들을 위해 상영 기간이 최대 한 주씩이라 영사실은 늘 바빴다”고 말했다. “앗! 잠깐만요. 몇 시죠?” 홀로 영사실을 지켜온 그가 영사기를 매만졌다. 예정보다 30분이 늦은 오후 1시 반 마지막 영화 ‘자전거 도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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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