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정치부 차장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 정권 초에 시작됐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였다. 안희정 씨를 비롯한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 현역 국회의원 23명 등 정치인 40여 명, 기업인 20여 명이 형사처벌됐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언급(2003년 10월 10일)했고, 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씨는 감옥행을 자처(2003년 10월 30일)하기까지 했다.
수사팀이 강하게 치고 나면, 뒷수습은 수뇌부의 몫이었다. 대선자금 수사의 한 갈래였던 나라종금 수사 때 안희정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됐다. 의기소침해 술잔을 기울이던 수사팀에 전화가 걸려왔다. 송광수 검찰총장이었다. “시련이 많을 텐데 그 정도 일에 기가 죽으면 되겠느냐.” 안 씨는 세 번째 청구된 영장으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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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짱(송광수 팬클럽)’ ‘안짱(안대희 팬클럽)’ 같은 국민 팬클럽이 결성됐고, 일부 극성 팬들은 보약을 싸들고 대검을 찾았다. 국민들의 관심 집중에 검찰 수뇌부는 모자를 쓰지 않고선 청사 밖 식당에 가기가 어려웠다.
안 전 대법관에게 대선자금 수사의 소회를 물었다. 그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검사였다”고 말했다. ‘운’의 의미를 묻자 “초년병 때부터 특별수사를 해온 나를, 대검 중수부장에 앉힌 건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다면 수사사령탑에 기용될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였다. 최근 검찰의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에 대해선 “정말 조심스러운데…”라며 한동안 고민하더니 “검찰 인사가 지나치게 지역 위주가 된 것 같다”고만 했다. 인사의 원칙이 실력보다는 출신 지역이 돼 수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인 듯했다.
지난 정권 초 ‘산 권력’을 단호하게 단죄하던 대선자금 수사 때와 달리 요즘 검찰은 정권 말의 ‘죽어가는 권력’에도 눈치를 보는 듯하다. 내곡동 사저 땅 헐값 매입이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파헤친 게 없다. 검찰 수뇌부는 2007년 이명박 후보 캠프 핵심 인물이었던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대선 직전 돈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대선자금 수사에 미온적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 검사’는 ‘정치적 중립’을 향한 검찰의 부단한 노력과 대통령의 의지, 그리고 국민의 성원이 어우러져야 탄생할 수 있다. ‘제2의 안대희’는 과연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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