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꽃, 연꽃 그림
‘수련도’(19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비단에 채색, 380.0X98.5cm. 연잎의 다양하고 선율적인 흐름이 압권인 작품이다. 바람결에 춤추는 연꽃들의 자태는 감미로운 교향곡을 듣는 듯 아름다운 음률과 같다.
○ 방 안에 설치된 행복의 연못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연꽃그림을 모두 불교적인 그림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 많은 연꽃 이미지가 불교와 관련이 있고 사찰에도 온갖 연꽃 이미지가 장식돼 있다. 이렇듯 불교가 연꽃을 대표적인 상징으로 삼게 된 이유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와 닮았기 때문이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맑은 꽃을 피워낸다. 진흙탕은 인간의 욕망으로 오염된 속세를 뜻하고 맑은 꽃은 진리의 빛이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민화나 일반 회화에 등장하는 연꽃은 불교와 상관이 없다. 군자(君子)의 꽃이요 행복의 꽃이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周敦이·1017∼1073)는 연꽃을 ‘군자의 왕’이라 했다. 진흙을 묻혀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의 모습을 유교의 이상적인 존재인 군자의 자태에 비유한 것이다. 같은 특징을 보고도 유교와 불교의 해석이 서로 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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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씨인 연과(蓮顆)의 발음 ‘롄커(li´ank ̄e)’는 연달아 과거에 합격한다는 뜻인 연과(連科)와 같다. 그래서 까치나 물총새가 연밥을 쪼아 먹는 그림은 과거시험에 연속해서 합격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연꽃이 무더기로 자라나 있는 그림은 연꽃의 왕성한 번식력을 닮아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들은 결국 행복이란 키워드로 귀결된다. 그러니 연꽃병풍을 방 안에 놓으면 그 공간은 곧 ‘행복의 연못’이 됐다.
○ 다채로운 조형 세계
‘연꽃그림’(19세기), 일본 개인 소장, 종이에 채색, 37.2cmX90.4cm. 여름 막바지의 풍경을 밝은 채색과 맑은 선묘, 그리고 천진난만한 이미지로 밝고 명랑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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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연꽃그림’은 동화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하늘을 향해 다투듯 치솟은 연꽃 줄기들의 윤곽선을 점선으로 처리해 가볍게 상승하는 느낌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꽃잎들은 하나둘 떨어지고 연잎마저 무거운 듯 고개를 꺾고 있다. 이러한 연꽃의 힘겨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는 마지막 꽃술을 빨고 오리와 물고기는 생명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가을의 길목에 선 늦여름의 경치이지만 전혀 쓸쓸함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밝은 채색, 맑은 선묘, 그리고 천진난만한 모습 때문이리라.
민화 속의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 아니다. 조선의 이념인 유교와 서민의 길상(吉祥)적인 바람이 서려 있는 군자의 꽃이자 행복의 꽃이다. 아울러 그 이미지도 각양각색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화음을 보여주는 연잎, 우주선처럼 솟구치는 연봉오리, 맑고 명랑하게 표현한 연꽃 등 다채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소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한국민화학회 회장 chongpm@g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