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시리아 내전 희생자 사연 소개
할라크는 지난해 5월 귀국길에 군정보부로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세미나엔 왜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등 취조 당했다. 다음 날에도 불려갔으나 그는 가족에게 “통상 절차일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며칠 뒤 가족은 수의가 입혀진 할라크의 시신을 인도받았다. 검시 의견은 “목매 숨졌다”는 것. 하지만 머리에 난 구멍이나 성기 절단, 도려내진 눈 등 고문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지난해 3월 시리아에서 저항운동이 시작된 지 15개월. 시민들의 저항이 세를 얻어가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47)의 폭압적 대응도 도를 더해가고 있다. 안과의사로 영국 유학까지 한 알아사드, 2000년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을 때만 해도 개혁파로 칭송받았으나 이제 그의 손은 피로 물들어가고 있다. 사망자만 최소 1만4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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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홈스의 대학생 아마드 아슈라크(21)는 작년 봄 발포가 시작되면서 시민 리포터로 변신했다. 살육의 현장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만 382개. 클릭 수만 220만 개. 그러다 올해 5월 좀 더 좋은 송출장비를 얻기 위해 다마스쿠스에서 반군 지도부와 만나다가 정부보안군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
북부 아파메아에서 채소가게를 하던 칼레드 나스랄라(32). 그는 처음엔 시위에 소극적이었으나 보안군이 지난해 3월 친구와 친척들에게 발포하면서 전사(戰士)로 변했다. 반군인 자유시리아군의 지부 대장이 돼 각종 전투에서 로켓포를 들고 맨 앞에 섰다. 올 5월 12일 아파메아 근교에서 정부군과 교전하다 저격병에게 희생됐다. 부인은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리스정교회 사제 바실리우스 나사르(30)는 민간인을 구하려다 총탄에, 그림을 좋아하는 여고생 알랄 아우프(15)는 시장에 나왔다가 총탄에 맞아 어머니의 무릎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반군이 돼 싸우던 사람들만 희생된 것은 아니다. 이사 무함마드 야셈(21)은 시리아군에서 탈영하다 사살됐다. 아버지와 가축을 키우다 지난해 징집된 그는 동족에게 총을 쏘는 게 싫어 탈영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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