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관예우 사실상 여전
동아일보 기자가 최근 전관 출신 A 변호사에게 횡령 사건 피의자로 가장해 ○○지법 사건을 맡아달라고 의뢰하자 이 변호사는 동료로 재직했던 판사들의 이름을 대며 “사건을 맡기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올해 초 지방 대도시 지법 부장판사로 퇴임해 해당 법원 바로 앞에 사무실을 차렸다. 전관예우 금지법은 최종 근무지의 사건 수임을 1년간 제한하고 있지만 그는 “선임계는 ‘어쏘(어소시에이트를 줄인 말·사무실에 소속된 다른 변호사를 지칭)’ 이름으로 올리면 상관없다”며 자신했다.
○ “어차피 기록 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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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주로 “좋은 판결이 나오도록 돕겠다”고 제안했고,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불기소 처분이 어려우면 구형 수위를 낮춰주겠다”며 검찰 단계에서 힘을 써주겠다고 했다.
‘횡령 사건 피의자를 빼내 달라’고 요청하자 수도권 지검 지청 출신으로 인근 도시에서 개업한 B 변호사는 “횡령액을 최소한으로 낮게 잡아 특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을 피하는 게 관건이다”며 “지청에 아는 검사들이 많으니 구형 수위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횡령이면 착수금이 3000만 원부터라고 보면 된다”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했다.
최종 근무지가 아닌 곳에서 개업했지만 최종 근무 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전관도 있었다. 법정에 설 필요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실력’을 행사하니 지역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지방 대도시 지검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초 개업한 J 변호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무실을 차렸지만 300km 가까이 떨어진 최종 근무지의 사건에 대해 “그곳에 아는 후배 검사가 많으니 전화로 (불기소 처분을) 부탁하면 들어줄 것”이라며 현직 검사 이름을 줄줄이 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장들도 전관 변호사의 인맥을 과시하며 사건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들은 “변호사와 계약서를 쓸 때 자신의 이름을 꼭 거론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무실 살림을 맡아야 하는 사무장이 사건을 받아 오면 수임료 10%가량을 주는 게 관행인데 이는 변호사법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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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영상] 前 검사 “대놓고 부탁하지는 않고, 주로 ‘선처’정도로…”
○ 수임제한 풀렸다며 전관 파워 광고하기도
퇴임한 지 1년이 지나 최종 근무지 사건의 수임 제한이 풀린 변호사들은 노골적으로 전관 신분을 내세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달 수임 제한 기간이 끝난 L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 변호사는 1년 이내 개업한 전관 변호사보다 더 힘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이들 중 일부는 법조전문지에 수임 제한 해제를 알리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그동안 제한됐던 최종 근무지 사건에서 노골적으로 전관 파워를 발휘하겠다는 선포인 셈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1년이 지났으니 전관예우가 된다’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법적 문제가 없어도 이런 광고는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협 광고심사위원회는 이 같은 광고에 대해 ‘공정한 경쟁에 의한 고객 유치’라는 협회 광고 원칙을 위반하는지 심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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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국 기자 m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