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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미국 스케치 여행]눈동자 없는 관음보살, 파랑새는 언제 오는가

입력 | 2012-06-30 03:00:00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불전을 짓고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한 노승이 찾아왔다. 그는 새로 만든 법당에 자신이 벽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차림은 비록 누추했지만 노승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한 주지는 그러라고 했다. 노승은 49일 동안 절대 법당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노승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법당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나 궁금해진 주지는 결국 49일째 되던 마지막 날 문에 구멍을 뚫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승은 온데간데없고 붓을 문 파랑새 한 마리가 벽화를 그리는 게 아닌가. 그림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찍으려던 찰나, 인기척을 느낀 파랑새는 붓을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관음보살의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고 한다.

맞배지붕과 후불벽화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전설 중 하나다. 파랑새가 그렸다는 벽화는 전남 강진의 무위사(無爲寺) 극락보전 안에 있다. 무위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아무 걸림이 없다’는 말로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다. 이 또한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벽화를 담고 있는 극락보전은 국보 13호로 1430년(세종 12년)에 지어졌다.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조선 초기 건물이다. 유려한 처마안허리 곡선의 팔작지붕이 대부분인 오늘날의 전통 한옥에 익숙한 내게 맞배지붕의 맛을 알게 해준 건물 중 하나다. 600년 가까이 된 목조 건축의 정교함이라니! 그 놀라움은 네 벽 모두 그림으로 장식된 법당 안까지 이어진다. 극락보전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무위사를 처음 찾았을 때는 황량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번창했을 때 58개 동에 이르던 사찰이 지금은 주차장에서부터 막 틀을 갖춰가기 시작하는 신진 사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을 들어서자 계단 위로 드러나는 극락보전 맞배지붕의 육중함에 이내 마음을 사로잡혔다. 극락보전 계단을 올라 측면 문으로 삼존불과 후불벽화(後佛壁畵)를 바라본다. 파랑새가 완성하지 못했다는 관음보살의 눈동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혹시 없는 것이 아니라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닐까.

무위의 편안함

나도 텅 빈 법당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본다. 법당 특유의 냄새가 섞인 실내는 부처님의 미소가 가득한 것만 같다. 살포시 스며드는 바람에 눈을 떠 보니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법당 안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새는 불상 위를 몇 바퀴 맴돌더니 이내 벽화 뒤로 날아 사라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화 뒤의 관음보살을 올려다본다. 하얀 옷을 입은 관음보살은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다. 그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비구의 어깨에 앉은 파랑새 하나. 한쪽에 써 있는 오언율시를 본다.

海岸孤絶處(해안고절처) 中有洛伽峰(중유낙가봉)
大聖住無住(대성주무주) 普門峰不峰(보문봉불봉)
明珠非我欲(명주비아욕) 靑鳥是人逢(청조시인봉)
但願蒼波上(단원창파상) 親瞻滿月容(친첨만월용)

바닷가 외딴 곳 한가운데 낙가봉이 있더라
석가모니불 계시든 안 계시든 아미타불 만나든 못 만나든
빛나는 구슬 내 바라는 바 아니고 우리가 찾는 건 파랑새뿐
단지 바라는 것은 푸른 물결 위 보름달 같은 얼굴 보기를


여름 오후의 극락보전 안에는 파랑새 날갯짓의 희미한 향기만 남았다. 순간 내게 무위의 편안함이 찾아왔다. 새가 공기 속을 날듯 아무 걸림 없는 그런 무위. 전설이 가져다주는 미완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렇게 후불벽화는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파랑새를 기다리는 듯,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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