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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회 좌담]이념논쟁과 언론보도

입력 | 2012-06-23 03:00:00

“언론, 특정 정파 전술전략에 휘말려서는 안돼”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18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이념논쟁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주향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동률 위원, 한기흥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당 내부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경선 부정사건에서 비롯된 통합진보당의 내분 사태가 우리 사회에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진당 진상조사위원회가 총체적인 부정경선으로 결론 내리고 국회에 입성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 등의 사퇴를 종용하자 두 의원을 비롯한 구당권파가 반발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종북 논란이 이념논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8일 ‘이념논쟁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19대 국회의 새로운 모습보다 통진당 사태에서 비롯한 이념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진강 위원장=광복 이후 지금까지 정도의 차는 있더라도 끊임없이 이념논쟁을 해 왔습니다. 지금의 자유민주적 헌법하에서도 이념논쟁이 필요한지, 이념의 개념이 무엇인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 남과 북, 좌와 우 같은 전통적인 편 가르기식 이념논쟁이 아니고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바라봤으면 합니다.

한기흥 스탠더드에디터=통진당의 부정경선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이들이 공교롭게도 과거 반국가단체 등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들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동아일보는 정치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움직임이 이뤄진다면 국익에 부합하겠느냐는 관점에서 보도했습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국민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인하고 북한 체제를 따르자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좀 더 엄중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주향 위원=진보-보수 논쟁은 정치체제가 있는 한 중요하게 가져갈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념에 대한 문제의식은 성향에 따라 보수 쪽으로도, 진보 쪽으로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보수언론으로 묶이는 시스템에 빠져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동률 위원=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해지기 위해서도 통진당 인사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도 공산당이 있고, 헌법 체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체제를 더 강건하게 하고, 그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통진당 사태에는 이념이 아니라 절차적 부정행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데 고도의 전술전략에 말려 본말이 전도됐습니다.

이 위원=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1980년대의 사상논쟁이 지금 재연되는 것도 웃기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잣대가 그대로인 것도 문제입니다. 경선 부정, 그로 인한 당내 갈등 해결 방식, 선거비용 부풀리기 같은 행태는 비판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통진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6석이나 준 국민의 뜻은 의미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반MB(이명박)라고 볼 수 있겠지만 통진당을 지지한 것에는 다른 의미가 있을 겁니다.

김 위원=이 의원이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이라는 것은 무척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국기(國基)가 문란해질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함부로 했다고 표현의 자유를 누구보다 지켜 줘야 하는 언론이 나서서 마구 혼내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가 꽃피는 나라가 더욱 튼튼한 법입니다. 이념에 대한 1960, 70년대식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절차적인 정의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메스를 가해야 합니다.

한 스탠더드에디터=발단은 통진당 내의 경선 과정이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자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과거를 복기해 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건전한 상식을 근거로 여러 모로 국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동아일보는 그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니면 누가 대한민국 보수를 지키겠느냐’라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일부 오해가 있는데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 문제는 통진당 내부에서 먼저 제기된 것이지 언론이 먼저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이 위원장=왜 색깔론 같은 이념 문제가 제기됐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선 과정의 부정 같은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췄어야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 그 사람들의 전력, 이념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게다가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하니까 본말이 바뀐 것 같습니다. 경선 과정의 부정이 확인된 후 그 시점에서 국회의원 자격을 법적으로 따지는 게 순서인데 그런 논의는 제쳐놓고 이념논쟁으로 가 버린 겁니다. 또 국회에서의 제명 문제도 선거관리위원회나 법을 하는 사람들이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습니다. 법적으로 보면 현재까지 나타난 사항만으로는 제명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기밀 유출이라든가 윤리규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제명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부정경선 문제는 통진당 내부의 문제이므로 당내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당내에서 치열하게 다퉈야 할 문제를 혁신파 쪽에서 당 밖으로 끄집어내 언론과 구당권파의 싸움으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 아닌가 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상에서 제기되는 의견을 살펴보면 대부분 양쪽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긴 하지만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중립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보는 독자도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 사상의 스펙트럼은 충분히 흡수할 만한 수준이 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론자유와 국익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까요? 또 현 상황을 보는 언론의 시각에 대한 조언도 해 주시죠.

이 위원장=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려는 토론과 달리 논쟁은 자기주장을 관철하여 이기려는 투쟁적인 행동입니다. 또 이념은 문학이나 철학, 종교와 결부되면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이며, 창조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나 정치와 결부되면 대립과 투쟁, 심지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요소입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이념논쟁은 매우 위험합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대국이 된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이념논쟁을 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위원=공명심과 아집이 결합했을 때, 그것도 권력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얼마나 무서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게 이번 통진당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은 못 참습니다.

김 위원=국익과 언론자유 중에서 국익에 방점을 찍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언론자유가 더 훌륭한 가치입니다. 언론자유가 보장된 나라는 튼튼하지만 국익을 위해 언론자유가 제한된 나라는 더 허술하다는 점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이상 개인적인 소신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1만 가지 자유가 있더라도 언론자유가 없으면 그 1만 가지 자유는 다 없어지지만 1만 가지 자유가 다 없고 언론자유가 있다면 결국엔 그 1만 가지 자유를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언론은 이념적인 잣대보다는 좀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접근하되 비열한 절차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이 위원장=언론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념논쟁이 연말의 대통령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강력한 견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또 지금부터라도 이념논쟁의 위해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