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성형 보편화로 모든 이가 젊어져
사람들은 외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기를 바라는 불멸에 대한 소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 그것은 암세포의 속성 아닌가. 자신의 불멸을 위해 종족살해도 불사하는 세포가 바로 암세포다. 암이 워낙 많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런 욕망이 암을 만들어낸 것일까. 선후관계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둘은 ‘서로 함께’ 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 동안 열풍이 좀 무섭다! 중년 이후에도 젊게 보인다는 건 연륜 속에 활력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노익장 역시 마찬가지 의미다. 하지만 ‘동안’은 그게 아니다. 아무런 연륜도 활기도 없는데 나이가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증발해버렸다는 뜻이다. 흡혈귀나 드라큘라처럼. 시간의 흔적이 없다는 건 그동안 아무런 성장이나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렇다. 얼굴만 앳된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비롯해 몸 전체가 미성숙 상태다. 정신연령이 낮은 건 말할 나위도 없다.
‘동안열풍’에 휩쓸리다 보면 자연히 내적 성숙을 외면하게 된다. 예컨대 30대 여성이 10대와 젊음과 미모를 경쟁하거나, 40∼50대 여성이 사춘기 때의 정서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 60대 여성이 인정욕망(남이 자신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것)에 시달리는 것, 이건 시쳇말로 ‘멘털 붕괴’와 다름없다. 실제로 ‘동안’에 갇히는 순간 마음은 조증과 울증을 오르락내리락하거나 혹은 도피와 중독을 되풀이하는 등 진짜로 붕괴를 향해 달려간다. ‘동안’을 얻은 대가치고는 참 가혹하다.
사계절의 운행이 만물을 낳고 기르듯이 인생 또한 생로병사의 리듬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특권과 서열이 없듯이 인생의 매순간도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돼야만 거둬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