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출에 큰 투자하면 지구촌 한류로 출렁일 것”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송향근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왼쪽)이 따루 살미넨 씨(가운데)와 아드리안 리 씨(오른쪽)에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프랑스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방송인 아드리안 리 씨(29)는 영어 방송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을 한다. 프랑스에 살 때 가족과 간단한 한국어로 대화하곤 했는데, 4년 전 한국에 정착한 후로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송향근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56)을 만나 ‘한국어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재단은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 사업을 총괄한다. 송 이사장은 1999년 핀란드 헬싱키대 초빙교수 시절 살미넨 씨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살미넨 씨=중학생 때 해외 펜팔을 하고 대학 때 중앙아시아를 공부하면서 한국인 친구들을 알게 됐어요. 1990년대 후반 한국에 놀러 오려고 핀란드에서 한국어를 배웠는데 당시만 해도 교재가 형편없었어요. 처음 배운 문장이 ‘나는 누구예요?’였죠. 누가 그런 문장을 쓰겠어요.
▽리 씨=요샌 한국어 공부법이 훨씬 재밌고 다양해졌어요. 교재뿐 아니라 유튜브의 한국어 동영상이나 블로그,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를 보고 공부하는 외국인이 많아요. 케이팝 가사를 따라하기도 하고요.
―한국어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아드리안 리
―외국인이 한국어 배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요.
▽송 이사장=책으로 배우는 것과 직접 대화하며 배우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한국어 실력 향상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얼마나 다가가려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살미넨 씨=핀란드에서 3년 이상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교재 속 표현과 실제 회화는 다르잖아요. 또 ‘발전’ ‘발달’ ‘개발’ 등 비슷한 단어가 많아 어떤 문맥에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몰랐어요. 신문과 방송을 자주 접하며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됐어요.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한국어 학습법은….
따루 살미넨
▽리 씨=맞아요. 한국의 매력은 ‘한국 사람들’ 같아요. 저는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에 여행 가면 관광지만 다니지 말고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서 함께 식당이나 노래방에 가보라고 해요. 한국인의 정(情)을 느끼면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우게 되죠.
―해외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송향근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리 씨=프랑스에서는 파리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에 등록하려고 새벽부터 줄을 설 정도예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여하고 여러 글로벌기업을 배출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면서 한국어도 주목받는 거죠.
▽살미넨 씨=핀란드에도 케이팝이 알려지면서 한국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더 많이 홍보해야 돼요.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고 핀란드에 돌아가서 직접 한국어를 가르칠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한국어 세계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미넨 씨=비영어권 국가에선 좋은 한국어 사전을 구하기가 어려워요. 핀란드인을 위해 제대로 된 한국어 사전이 없어서 영한사전이나 한영사전으로 찾으니 한계가 있죠.
▽리 씨=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를 많이 만들면 좋겠어요. 교환학생이나 인턴십, 각종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늘리면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려고 할 거예요. 저는 대학생 때 한국에 와서 인턴십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살미넨 씨=저도 한국에 처음 놀러왔다가 한국이 아주 재미있어서 아예 전공을 동아시아학으로 바꾸고 200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했죠.
▽송 이사장=외국의 초중고교 정규과목에 단 몇 시간이라도 한국어 과목이 채택되도록 정부가 노력할 필요가 있어요. 또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줘야 해요. 그래야 그들이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도 한국에 힘이 될 수 있죠.
―한국어 학습자로서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은….
▽살미넨 씨=한국인들이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게 안타까워요. ‘까만 상자’라고 해도 되는데 왜 굳이 ‘블랙박스’라고 하는지.
▽송 이사장=세종학당도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처럼 한국어를 보급하는 최고의 표준화된 교육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송향근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전 세계 한국어 사용자 8000만 명 추산”
부산외국어대 한국어문학부 교수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어교원자격심사위원장으로 있다. 핀란드 헬싱키대 동아시아학과 초빙교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어능력시험 자문위원, 이중언어학회 회장을 지냈다.
●따루 살미넨 씨 “한국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며 배웠어요”
핀란드 출생으로 핀란드 헬싱키대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다. 2007년부터 KBS2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방송, 번역, 강연활동과 함께 막걸리집을 운영 중이다.
●아드리안 리 씨 “쫄깃 - 아삭 등 의태어 의성어 특히 재밌어”
프랑스 출생으로 프랑스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의 폴리테크니크 그르노블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아리랑TV ‘쇼비즈 코리아’와 아리랑라디오 ‘캐치 더 웨이브’의 진행을 맡고 있다. 한국 이름은 이준.
정리=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