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호 한국지방자치학회장 대전대 교수
위원회는 대도시 자치구·군 간 행정서비스의 불균형, 생활권과 행정권의 괴리, 시군 간 갈등, 대도시 종합행정의 필요성 등을 자치구·군 폐지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자치구·군 폐지가 아니라 시군 간 권한 및 재정 조정, 자치구·군 간 경계 조정, 합리적 갈등관리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그동안 대도시 자치제도에 관한 국내외 연구는 자치구·군의 폐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체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개악임을 밝혀왔다.
개편안은 지방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주민 수를 현재 1만3400명에서 2만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나게 한다. 선진국에서는 흔히 지방의원 한 명이 1000명 미만의 주민을 대표한다. 대도시 자치구·군 폐지와 시군 합병으로 인한 선출직 공직자의 격감은 정책의 공정하고 신중한 심의와 결정, 다양한 주민 이익의 고른 대변, 행정의 대응성 등과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손상시킨다. 게다가 개편안의 법제화는 이미 세계 최대(평균인구 22만 명)의 기초지방자치단체 규모를 대폭 확대해 자치행정에 대한 주민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하고 주민 참여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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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 결과에 역행하는 단일 중심 편향의 개편안을 채택한 위원회의 결정은 반지성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지방자치체제의 획일성을 심화하고 엄청난 비용과 갈등을 야기할 자치구·군 폐지안과 시군 합병안은 철회해야 한다. 6년 전 시군 자치제를 폐지한 뒤 많은 부작용을 겪고 최근 시군 자치제 부활을 포함한 지방자치체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뼈아픈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개편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지방자치단체의 존폐는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선진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에서 더이상 해당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74개 자치구·군을 일거에 폐지하고 시군 합병을 사실상 강제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안성호 한국지방자치학회장 대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