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
우리 환경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17회 환경의 날과 환경운동 30주년은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엔보다 더 긴 환경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40년을 17년으로 자르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의 환경운동을 30년으로 잡는 것은 역사 왜곡에 가깝다.
우리는 독특한 환경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산업국들은 먼저 산업화를 추진하고 이후 심각한 환경문제를 겪은 다음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환경문제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함께 추진했다. 그래서 환경정책의 역사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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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산림법을 제정하고 1967년 산림청을 독립행정기관으로 만들어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한 것도 세계 환경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황폐해진 우리의 산에 지금까지 1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
우리의 환경운동은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농촌 근대화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후에 산림녹화, 하천 정화, 주택 개량, 상하수도 보급 등과 같은 생활환경 개선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환경단체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76년 환경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한국환경문제협의회(현 일사회)가 결성됐고, 1977년 자연보호협의회(현 자연보호중앙연맹)라는 전국 조직이 자연보호를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부 환경단체가 우리의 환경운동 역사를 30년으로 축소한 것은 1982년 창립된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염두에 둔 것이다. 1978년 경남 고리에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고, 1979년 울산공단 주변에 공해병이 발생하자 이때 반핵·반공해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본다면 반핵·반공해운동 30주년이 맞지만 환경운동은 이보다 훨씬 전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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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