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화의 구장이 ‘한숨 구장’으로

입력 | 2012-05-30 03:00:00

‘2002년 4강’ 10년… 월드컵축구장 적자 허덕




29일 오전 10시 울산 남구 옥동 문수축구경기장 앞 주차장. 총 1539대를 수용할 수 있는 이 주차장에는 500여 대만 주차돼 있을 뿐 나머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축구를 하는 등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세워놓은 차는 거의 없다. 주차된 차는 대부분 등산을 하거나 골프를 치기 위해 교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세워놓은 것이었다. 매년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한 달가량을 제외하고 반복되는 문수경기장 풍경이다.

울산뿐 아니다. 2002 월드컵이 열렸던 전국 10개 축구 경기장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월드컵 개최 전부터 경기장 활용을 놓고 갖가지 방안이 쏟아졌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제대로 이뤄진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 ‘4강 신화’의 짙은 그늘

박맹우 울산시장은 29일 “월드컵을 제외하고 4만2000여 석 규모의 경기장을 절반 이상 채운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이대로 가면 월드컵 경기장은 ‘애물단지’를 넘어 콘크리트 괴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경기장은 지난해에만 17억 원의 적자가 났다. 월드컵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프로축구 경기 외에는 마땅히 활용할 일도 없다. 지난해 열린 프로축구 경기는 28회. 관중 수는 26만9551명으로 경기당 평균 9626명이 입장했다.

바다를 끼고 들어서 월드컵 당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으로 주목받았던 제주 서귀포월드컵경기장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놀이시설이나 테마박물관 등이 들어섰지만 연간 임대수익은 1억2000만 원에 불과하다. 당초 경기장을 중심으로 관광복합단지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관광객을 끌어들일 유인책이 없다 보니 K리그 경기 때 말고는 썰렁한 분위기다. 부산 대전 대구 월드컵경기장들도 매년 적게는 3억∼4억 원, 많게는 2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적자는 대부분 주민이 낸 세금으로 메워진다.

흑자를 내는 구장도 있다.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지난해에만 9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다른 경기장과 달리 사후 활용에 무게를 두고 월드컵 이후 대형할인점 멀티플렉스 등이 대거 입점했기 때문이다. 광주와 경기 수원, 전북 전주 월드컵경기장도 적자에서 벗어나 규모는 작지만 흑자를 내고 있다.

○ 발상의 전환 필요

월드컵 신화의 산실인 경기장을 ‘세금 먹는 하마’에서 지역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바꾸려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의 부속시설로 전락한 경기장 운영을 과감히 민간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10개 경기장 가운데 수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지자체 산하 시설관리공단이 맡고 있다. 경기장의 공공성을 감안한 방식이지만 운영비 대부분을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다 보니 ‘혈세 낭비’ 논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반면 수원의 경우 경기장 운영을 전담할 별도 재단법인이 꾸려졌다. 일부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자체 운영이 목적이라 다양한 활용방안이 마련됐다. 덕분에 2006년부터 지원 없이 자립 경영을 하고 있다.

경기장 주변에 대한 규제 완화도 시급하다. 대전 경기장은 당초 민간자본을 유치해 쇼핑몰을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시설이어서 무산됐다. 울산 문수경기장 역시 2005년 근처에 야구장과 대형 유통센터 건립을 추진키로 하고 대기업과 협약까지 체결했지만 규제에 묶여 무기한 보류됐다.

▶ [채널A 영상] 인천 축구 경기장 완공, 박지성 뛰고 있는 EPL 구장 벤치마킹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