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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가취현불가굴치(可就見不可屈致)

입력 | 2012-05-30 03:00:00

可: 가할 가 就: 나아갈 취 見: 뵐 현 不: 아닐 불
可: 가할 가 屈: 굽을 굴 致: 이를 치




인재란 온 정성을 다해 모셔 와야 한다는 의미로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과 유사하다. ‘삼국지’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 의하면 제갈량은 자가 공명(孔明)이고 농사를 지으며 양보음(梁父吟)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그는 평소 자신을 명재상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했지만 당시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단지 최주평(崔州平)이나 서서(徐庶) 등과 친분이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유비는 신야(新野)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를 만나러 온 서서가 와룡(臥龍)인 제갈공명을 만나 보라고 조언하자 유비가 서서에게 데리고 올 수 없겠냐고 했다. 그러자 서서가 바로 이 말을 하고는 장군께서 몸을 굽혀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 차례나 찾아간 다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유비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붕괴 직전인 한 왕실의 상황을 말하면서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지만 천하에 대의(大義)를 펼치고자 하니 도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제갈량은 유비가 자신의 낮은 신분에 괘념치 않고 세 차례나 몸을 굽혀 찾아온 데 감동했다. 그리고 당시의 형세를 일목요연하게 분석하면서 조조가 북방의 원소를 무찌르고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시운(時運) 때문만이 아니고 인모(人謀)도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과 강동의 손권은 이미 3대째에 이르러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과거 고조가 제업(帝業)을 세웠던 익주를 근거지로 하여 천하를 도모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고 대안을 내놓았다. 한 가지 걸림돌은 익주는 이미 유장(劉璋)이란 자가 차지하고 있으나 그가 우매하고 유약하며 민심을 별로 얻고 있지 못하고 있으므로 별 무리 없이 그곳을 차지할 것이라는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유비는 감탄했다. 당시 제갈량이 겨우 이십대 후반의 나이였으니 말이다. 이후 제갈량은 유비의 군사(軍師)가 됐고 오나라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여 삼국정립(三國鼎立)의 초석을 다졌다. 두 사람은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군신 관계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