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 산업부 차장
하긴 한반도의 상황을 이야기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한국에선 100년(1906∼2005년)간 평균기온이 1.8도 상승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하다. 1년에 고작 0.018도가 올라가는 게 나의 삶에 당장 어떤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회원 출신으로 덴마크의 통계학자인 비외른 롬보르는 1998년 ‘회의적(懷疑的) 환경주의자’라는 책을 펴내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이미 공개된 통계 수치를 활용해 환경 비관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핵심은 인류는 예전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한국에서 봄을 보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3월 하순경 눈을 만났다. 하늘을 뒤덮고 날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한기에 떨다가 문득 춘삼월, 그것도 3월 하순이라는 점을 깨닫고 당황했다. 그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여름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갔다.
기상청 홈페이지를 들여다봤다. 올해 4월 1일 서울의 최저기온은 0.6도, 최고기온은 9.4도다. 얼음만 안 얼었지 겨울이다. 꼭 한 달 뒤인 5월 1일 최저기온은 17.3도, 최고기온은 28.3도까지 올라갔다. 달력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건 6월 1일.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6월 1일 최고기온은 평균 25.5도로 올해 5월 1일보다 낮다.
기온만 보면 올해는 한 달 늦게 겨울이 끝났고, 한 달 앞서 여름이 시작된 셈이다. 제대로 된 봄 날씨를 누린 기간은 한 달도 채 안 됐을 것이다. 벚꽃은 피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언제인가 싶더니 어느 순간 다 떨어졌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피기는 한 걸까.
사실 기후 변화 문제는 우리의 삶에 이미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재료 값이 상승하면서 한국의 식품업계와 의류업계도 원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연근해 어종과 재배 작물이 달라지면서 식탁의 메뉴도 바뀌고 봄가을 옷이 필요 없게 됐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나친 생태주의도, 기술 낙관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올해 여름엔 길을 가다가 문이 열린 채 에어컨을 틀어대는 매장엔 아예 들어가지 말자. 넥타이는 풀고, 웬만한 곳은 걸어다니자. 레이철 카슨은 역작 ‘침묵의 봄’에서 새들의 소리가 사라진 죽음의 봄을 묘사했지만 우리에겐 그런 봄조차 없을 수 있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