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영역으로 불리던 해외건설 현장에 국내 건설사 여직원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왼쪽부터 현대건설 권혜령 대리, 삼성건설 강채리 기사, GS건설 신근해 차장, 포스코건설 강혜원 기사. 각 건설사 제공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는 해외건설 현장에 여성인력의 진출이 활발하다. 그동안 해외 현장은 여성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은 중동지역에 밀집한 데다 통제된 조직생활을 해야 하고,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다국적 건설공사 인력을 다뤄야 하는 업무 특성 등으로 ‘금녀(禁女)의 영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업체의 수주지역이 다양해지고, 공사 내용도 토목이나 건축물 시공 일변도에서 벗어나 설계나 자재구매, 사업관리 등으로 확대되면서 여성 특유의 꼼꼼한 관리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해외 건설현장에 나가 있는 여성직원은 약 50명. 현대건설의 권 대리와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의 강채리 기사(27), GS건설의 신근해 차장(40), 포스코건설의 강혜원 기사(25) 등이 대표선수 격으로 이들은 각각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페루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은 해외 현장에서 이겨내야 할 장애물 중 하나다. 현장에선 고민을 털어놓을 동성 친구를 찾기가 어렵고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입사 3개월 만인 지난해 3월부터 페루 칠카우노 복합화력발전소에서 스팀터빈 시공 업무를 맡고 있는 포스코건설 강 기사는 “가급적 자주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해 부모님, 친구와 연락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운동을 하거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해외 현장에 나간 여직원이 적적함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다. GS건설의 신 차장은 “긴 파견 기간 탓에 결혼 시기를 놓쳤다”며 “해외근무 초기에는 아랍 왕자와 결혼하겠다는 원대한 꿈도 꿨지만 이제는 결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단계”라며 웃었다.
이들은 해외공사 현장의 생활에 대해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행운’이었다”고 평가했다. 해외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생생한 건설 노하우가 있고, 끈끈한 동지애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권 대리는 “현장의 직원들은 모두 미국과 영국 등에서 학위를 받은 전문가”라며 “다양한 국적의 전문가와 협업을 하며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GS건설 신 차장 역시 “건설사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면 남녀 구분 없이 해외 현장 근무는 필수 코스이며 나 또한 다시 현장 근무를 자원할 것”이라며 “다만 다음번에는 아랍에미리트보다는 여성의 활동에 제약이 덜한 곳으로 배치받기를 희망한다”며 웃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