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그런데 운 좋게, 숲 속을 거니는 채로 숲의 구조와 본질을 읽어낸다 한들 그것은 행복한 일일까. 당대에 수행하고 있는 자신들의 과업과 그 과업의 역사적 의미를 낱낱이 파악할 경우, 추동력이 얻어지기도 하지만 운명론에 휘둘리기도 한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지금 나의 상황과 그 상황의 원인을 동시에 포착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생각만큼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일상을 살아가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 그 포착은 무력감과 함께 거대한 벽을 선사한다.
크게 보아 삼성가(家)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에피소드도 우리 시대에 편재한 계기와 기미를 모아 어떤 그림을 보여주는데, 썩 유쾌하지 못하다. 저간의 사정을 요약하면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유산을 놓고 벌어지는 가문의 다툼이다. 이 다툼을 표현하기 위해 상당수 매체가 일제히, 삼성의 가계도와 3세를 포함한 가문의 구성원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우리는 잊고 지내던 동시대의 중요한 단면을 명료하게 보게 된다.
이렇게 전개되는 한 가문의 에피소드는 문득, 떠올릴 일이 없던 우리 일상의 구조와 본질을 순간적으로 드러내 준다. 대다수의 국민이 이용하는 스마트폰과 TV, 그리고 밀가루와 두부, 콩나물을 포함한 갖가지 식료품들, 그 식료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모두 한 가문에서 파생된 기업들의 것이란 사실이 역사책의 친절한 도해(圖解)처럼 펼쳐진다. 문화로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삼성전자와 CJ, 신세계 그렇게 범삼성 가문의 기업 몇 개면 간단하게 구축된다.
지나친 민감함에 견강부회일 수 있다. 이제는 소원해 보이기까지 하는 혈연이 남아 있을 뿐이다. 법률적으로도, 지분 구조로도 특별한 관계가 없는 개별 기업집단들의 얘기다. 그러나 후대의 사가(史家)들에게, 수십 년에 걸친 이씨 가문의 확장은 오래된 재벌 구조의 정착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본질 중 하나로 파악될 것이다.
80대의 맏형이 70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어린애 같은 발언을 탓하든, 70대의 동생이 그 형을 퇴출된 양반으로 몰아붙이든 가문 밖 사람들로서는 알 바 아니다. 다만 그들의 다툼이 흘깃 보여주는 이 시대 골격의 중요한 부분은 보기에 부담스럽다. 하루하루를 무던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것은 모종의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거대 가문의 희한한 다툼이 하루빨리 종료되기를, 그래서 더욱 바라게 된다.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apori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