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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마비법’ 논란 부른 국회선진화법… 해법은 없나

입력 | 2012-04-21 03:00:00

“최루탄-점거 폭력엔 강력징계… 의원 자유투표 보장해야”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면 불임(不姙) 국회가 될까?’

최악의 ‘폭력 국회’로 기록된 18대 임기 막바지에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은 국회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다수당은 직권상정을, 소수당은 물리력 행사를 포기하는 대신 다수당에는 신속처리제도(패스트 트랙)를, 소수당에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필리버스터)를 주는 것이다.

문제는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안건을 처리하려면 재적의원 5분의 3(60%)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180석 이상을 가진 거대 정당이 나오지 않는 한 법안 처리가 힘들다는 데 있다. 소수당이 ‘게임의 룰’을 어겨 다시 몸싸움을 벌이더라도 이를 제재할 강력한 ‘벌칙 조항’도 마땅히 없다. 이 법이 다수결 원칙만 훼손하고 몸싸움은 그대로인 ‘국회마비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법안 처리 못하는 국회?

20일 새누리당 중진의원들은 잇달아 국회선진화법 처리에 반대 의견을 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기자들을 만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우리 정치 현실에 맞지 않으면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도입을 연기하는 게 진정한 용기”라고 말했다. 정몽준 전 대표도 “필리버스터 도입으로 국회 폭력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쟁방지법’만 만들면 전쟁이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며 필리버스터 도입에 반대했다.

이런 우려는 17일 국회 운영위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에서 주요 절차마다 재적의원 또는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50% 다수결을 넘는 60% 이상의 ‘가중 다수결(Super Majority)’이 국회의 새로운 ‘게임의 룰’로 자리 잡는다는 의미다. 새로 설치될 여야 동수(6명)의 상임위 안건조정위에서 타협안을 상임위 전체회의에 올릴 때도, 180일이 지나면 상임위에서 처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신속처리제의 대상 안건을 정할 때도,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종료할 때도 모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소수당이 ‘오케이’ 하지 않은 안건은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강장석 국민대 교수(한국의회학회 회장)는 “법안을 의결할 때는 50% 이상이면 되는데, 법안을 심사할 때는 60%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20일 저녁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나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국회선진화법을 큰 틀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안에는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도 종료된 것으로 간주해 다음 회기에 법안을 표결 처리할 수 있는 등 보완책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국회선진화법이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임을 내세워 현행 유지를 압박하고 있다.

○ 문화가 제도를 따라갈까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의원에게 자율성이 없는 정당 중심의 정치문화다. 당론이란 이름으로 의원들의 자유투표를 가로막는 상황에서 60% 이상의 ‘가중 다수결’은 국회의 모든 절차를 중단시키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몽준 전 대표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제도 정비에 앞서 강제적 당론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의화 부의장은 “신속처리 안건을 지정하는 요건이라도 5분의 3 이상에서 과반수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만 종료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 역시 실질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는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소수당을 배려한 이런 절차에도 회의장 출입을 막거나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의원은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요구다.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지난해 11월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고도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재선에 성공했다. 이현출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폭력 의원 징계와 관련해 윤리위원회를 거치도록 한 조항은 그동안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윤리위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 징계안이 자동으로 본회의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국회의장에게서 직권상정 권한을 빼앗았으면 의장의 질서유지권을 강화하는 등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줘야 한다”며 “미국처럼 법제사법위원회를 아예 의장 산하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19대 국회부터 적용될 게임의 룰인 만큼 18대가 아닌 19대 국회에서 논의해 정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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