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국제부 기자
한국에 왔을 때 또 한 번 놀랐다. 중국보다 열 배는 더 깨끗해 보였다. 북한에선 뇌물을 주는 것을 ‘고인다’고 표현한다.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다. 내가 처음 본 남쪽은 고이지 않고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나라였다.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나라도 있다니…. 실제로 지금까지도 나는 고여 본 일이 없다.
하지만 10년쯤 살아 보니 이제는 “나는 누구에게 뇌물을 찔러준 적도, 접대를 받은 적도, 불법을 저지른 적도 없다”는 말이 마냥 자랑거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른바 ‘상류계층’ 중에는 그런 말을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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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대구의 한 방송기자가 정치인이 돌린 돈봉투 100만 원을 자진 신고해 1억2000만 원의 포상금을 받은 일이 잠깐 화제가 되었다. 그나마 선관위 포상금 제도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이쯤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부패한 북한에서 크게 성과를 거둔 뇌물 방지대책 하나를 소개한다. 북한은 오랫동안 탈북자를 막기 위해 국경경비대와 단속초소를 몇 배로 늘리고, 감시망을 거미줄처럼 촘촘히 하는 등 별짓을 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고이기만 하면 초소 통과는 걱정이 없었다. 심지어 국경경비대가 탈북자를 직접 중국으로 안내까지 해주었기 때문이다.
골머리를 앓던 북한은 2010년쯤 “경비대원이 탈북 시도를 신고하면 받은 뇌물은 절대 빼앗지 않고 오히려 노동당 입당과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던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이는 내가 알기론 북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뇌물 방지 정책이 됐다.
경비대원들이 탈북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사례가 급증하자 급기야 “그냥 냅다 뛰어 도강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불신이 팽배해진 결과 지금은 돈을 보따리에 싸들고도 탈북을 도모하기 어렵게 됐다. 뇌물을 주고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줄어 국경경비대도 결국 손가락만 빨게 됐으니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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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19대 국회가 “검은돈 받은 의원을 고발하는 사람은 대신 국회의원 시켜준다”고 한다거나 “뇌물 공여자를 신고한 국회의원은 공천 때 가점을 준다”고 선언한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청렴도는 단숨에 세계 최상위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