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 밴드 ‘원 트릭 포니스’ 리더 이원열 씨, 소설 ‘헝거 게임’ 번역
‘헝거 게임’을 번역한 이원열 씨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대가들의 작품도 번역하고 싶지만 신인인 내게는 의뢰가 오지 않는다”며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살벌한 취업난 속에 그 좋다는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자유로우나 불안한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뭘까. 이 씨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사 후 2년 반 동안 낙도에 유배라도 온 것처럼 일만 하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열아홉 살부터 꾸준히 해오던 음악을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죠. 회사를 그만둔 뒤 일본 소설을 번역하는 지인이 ‘영어 번역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얼결에 ‘좋다’고 했고, 출판사로부터 두툼한 원서 한 권을 건네받았죠.”
대학 입학 후엔 인디 밴드 ‘줄리아 하트’와 ‘라이너스의 담요’ 등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동시에 영미권 시와 소설에 빠져들었다. 특히 독일계 미국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시와 단편소설을 좋아했다.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어 원서를 찾아 읽고 번역해 자신의 블로그 등에 올렸다. 그에게 감동을 준 문장들을 더 많은 이와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2008년 회사를 다니던 중에도 월간 ‘판타스틱’ 6월호에 부코스키의 단편 소설 ‘블루스와 날개 달린 외야수 J.C.’를 번역해 싣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둔 후 4개월간 유럽과 중동을 여행하면서 틈틈이 첫 원고인 논픽션 ‘내 어둠의 근원’을 번역했다. 이후 ‘헝거 게임’을 비롯해 SF, 미스터리, 범죄, 그래픽 노블(만화처럼 생생한 그림과 소설이 결합된 형태)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 번역 의뢰가 끊이지 않았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경제·경영서는 잘 번역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소설, 특히 따옴표 속에 들어가는 대화를 번역하는 게 흥미로워요. 한마디 대사에서도 툭 던지듯 말한 건지, 비꼬듯 혹은 쭈뼛쭈뼛 말한 건지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궁리하는 게 재밌어요.”
잠시 그만뒀던 음악도 다시 시작했다. 이 씨는 ‘원 트릭 포니스’(한 가지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숙어)에서 작사 작곡 및 노래를 맡고 있다. 올해 안으로 1집 음반을 낼 예정이다. 종종 홍익대 앞 클럽에서 공연도 한다.
“회사 다닐 때보다 돈은 못 벌지만 좋아하는 책 읽고 번역하면서 음악도 할 수 있으니 좋죠. 그래도 만족하는 건 아니에요. 번역료는 올랐으면 좋겠고, 공연할 때 사람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고, 음반 내면 팔리면 좋겠어요. 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