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라인에 마우스 휠 접목… 쫙 빠지고 확 잡히죠”
LG전자 정지윤 차장(왼쪽)과 조상현 책임연구원이 매직리모컨의 개발 스토리를 설명하며 웃고 있다. 이들은 “PC의 대중화를 이끈 마우스처럼 매직리모컨이 스마트TV의 대중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제공
“라인이 정말 잘 빠졌죠?” “소파에 누워서 아무데나 가리켜도 작동하는 리모컨 보셨어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만난 액정표시장치(LCD) TV 인풋 디바이스 기획그룹 정지윤 차장과 LCD TV 연구9실 조상현 책임연구원은 연방 매직리모컨 소개에 여념이 없었다. 부모 눈에는 자식이 가장 예쁘게 보이듯이 5년에 걸친 개발 기간 끝에 세상에 내놓은 매직리모컨은 이들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과 같았다. 개발자들로부터 매직리모컨 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 “복잡한 리모컨은 가라” 2007년 이들은 스마트TV 개발에 착수하면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리모컨도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매년 신제품을 내놓았지만 2012년 버전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다.
“사람들은 복잡한 리모컨에 지쳐 있었죠. 버튼이 너무 많아 리모컨을 쓰기가 두렵다는 의견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들은 여성용 하이힐과 마우스를 모티브로 삼고, 휠을 리모컨에 넣기로 했다. 채널 변경이나 음성 조절은 버튼보다 휠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자이로와 가속도 센서를 넣고 블루투스로 TV와 연결해 어떤 자세로도 TV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문제는 디자인과 가격. 기획파트인 정 차장이 “좀 더 손에 잘 잡히게 만들자”고 운을 떼면 개발파트인 조 책임연구원은 “그렇게 해서는 기능을 담을 수 없다”고 대립했다. 시제품을 들고 오면 ‘좀 더 싸야 한다’는 입장과 ‘그러려면 그만두는 게 낫다’는 견해가 맞섰다.
연일 회의가 이어졌다. 그렇게 두 가지 모델이 나왔다. 하지만 최종 결정 단계에서 한 모델은 폐기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모델이 여러 가지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 정 차장은 “금형에 들어간 돈이 수억 원인데 이걸 폐기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 세계에서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는 리모컨을 위해 LG전자의 2012년형 스마트TV에 딸린 매직리모컨. 버튼을 최소화하고 휠을 달아 사용이 편리하게 했다. LG전자 제공
다음 관건은 음성인식이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모두 지원해야 했다. 정 차장은 음성인식 기술을 제공한 업체와 함께 세계 각국을 돌면서 시연을 했다. 검사를 위해 미국을 찾았을 땐 마침 스티브 잡스가 타계한 때였다. 표본 확보를 위해 섭외한 사람들은 죄다 마이크에 대고 잡스를 불렀다. 그런데 워낙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다 보니 발음이 천차만별이었다. ‘스티브 잡스’ ‘스티브 좁스’ ‘스태브 좝스’ 등 다양한 발음이 넘쳐났다. 이들의 말이 모두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는 특이한 방송환경과 맞닥뜨렸다.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의 인터넷TV(IPTV) 같은 서비스를 하면서 시청자가 바로 화면을 보며 상품을 주문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매직리모컨의 기능이 이와 혼동될 수 있다는 것. 정 차장은 “화면으로 충분히 각종 기능을 구현할 수 있으니 이 점을 이해해 달라”고 읍소했다. 전 세계 80여 곳의 전파연구소와 방송단체를 찾아다니며 기능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나온 리모컨에는 호평이 이어졌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매장에 진열된 제품에 대한 평가도 기대 이상이었다. 한 할머니는 “이제 우리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리모컨이 나왔다”며 직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 차장은 “마우스가 PC의 대중화를 이끌었듯이 이제 매직리모컨이 스마트TV의 대중화를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책임연구원은 “이미 내년에 내놓을 버전6의 기획이 다 끝났다”며 “올해보다 훨씬 놀랄 만한 기술의 결정체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